더아프로 포커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황금비율은 어디까지인가 2011-12-05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황금비율은 어디까지인가
[포커스] 미래형 퍼포먼스를 예고하는 태양의서커스 최신작들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의 신작 <이리스>(IRIS)를 봤다. “발상 전환으로 서커스에서 블루오션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 이 초대형 공연 기업은 혼합을 즐긴다. 이질적인 것들을 한 냄비에 넣고 끓이는 식이다. 출연진과 제작진은 20~30개국에 이르는 다국적이고, <미스테르>(Mystère)에 널뛰기를 ‘코리안 플랭크’(Korean plank)로 삽입한 것처럼 세계에서 재료를 수집한다. “몸집이 커진 태양의서커스가 자극을 받고 품질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쇼의 소재와 예술가를 끌어 모아야 한다.” 저글러 출신의 창업자 기 랄리베르테 (Guy Laliberte)의 말이다.

<이리스>에는 ‘영화 세상으로의 여행''(A Journey Through the World of Cinema)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번에는 영화와의 하이브리드(hybrid)인 셈이다. 서커스와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단단하게 섞일지 궁금했다. 우선 쇼를 담는 그릇으로 할리우드의 코닥극장(Kodak Theatre)을 고른 건 태양의서커스 다웠다. 해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영화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객석으로 입장하는데 한 여자가 길을 막으며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포스터에서 본 광대였다. 허리춤에 두툼한 훌라후프 모양의 프랙시노스코프(praxinoscope)를 차고 있었다. 프랙시노스코프는 거울과 색칠한 사진을 이용해 만든 장치로, 회전시키면 움직이는 이미지를 빚어낸다. 반대편 객석에서는 머리카락이 채찍처럼 긴 남자 광대가 대머리 관객을 유쾌하게 조롱하고 있었다.

MGM 영화의 사자를 패러디한 광대의 포효로 무대가 열렸다. <이리스>는 젊은 작곡가 버스터와 스타 지망생 스칼렛이 무성영화시대부터 영화가 지나온 길을 훑는다. 초반에 등장하는 클래식한 영화 소품 3개가 인상적이었다. 바퀴가 달렸고 원격제어 방식인 리모트 컨트롤로 움직이는 카메라와 조명기, 그리고 트럼펫을 닮은 스피커다. 특히 카메라는 실시간 영상을 스크린에 투사하면서 무대와 호흡했다.

첫 번째 서커스는 머리 위에서 펼쳐졌다. 남자 곡예사 두 명이 줄 하나에 의지해 공중에서 헤어졌다 겹쳐지기를 반복했다. 팔을 로프처럼 쓰거나 다리로만 지탱하면서 아찔한 무늬를 만들었다. 조명은 각도와 거리에 따라 그림자를 흥미로운 패턴으로 변주했다. 여성 곡예사 네 명이 눕혀 놓은 바퀴 위에서 허리를 뒤로 구부리며 몸을 쌓고 허무는 묘기가 특히 강렬했다. 미리 촬영해 편집한 것이겠지만 마치 실시간 열 감지 센서라도 작동하는 듯 기하학적 풍경이 스크린에 찍히고 있었다.

영화는 조각들의 총합이다. 편집과 저장, 재생의 예술인 영화와 달리 서커스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한다. 매번 위험을 무릅쓰지만 덧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리스>는 숱한 곡예 장면을 촬영해놓고 무대에서 화학반응을 실험하듯 뒤섞었다. 서커스와 영상은 라이브 음악의 도움으로 어긋나지 않고 타이밍이 맞았다. 스크린에 뜬 커다란 종을 스크린 밖의 광대가 치면 사람들이 피아노줄을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 판박이처럼 놓인 7개의 방에서 남녀가 똑같이 움직이면서 시간차를 두는 대목,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곡예사들이 드러누워 다리 힘만으로 사람을 회전시키는 묘기도 영화에 대한 비유로 읽혔다.

2막은 스칼렛이 백스테이지를 통해 무대로 올라가는 모습을 실시간 영상으로 보여주며 시작된다. 자동차, 비행기, 우주여행, 카우보이, 정글 등 여러 경우의 수를 상상하며 좋은 시나리오를 찾는 장면에서는 광대가 허리춤에 찬 두 개의 깡통이 눈에 들어왔다. 한 깡통에는 ‘시나리오(script)'', 다른 하나엔 ‘쓰레기’(trash)라고 적혀 있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영화 촬영 현장의 배우들과 크루들, 크레인 등 장치를 압도적인 규모로 보여줬다. 관객을 참여시켜 아카데미 시상식을 패러디하는 대목도 재미있었다.

<이리스> <마이클 잭슨: 불멸의 월드투어>

연극, 디지털로 교감하다

태양의서커스는 동시대 관객과의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제작비 1,750억원을 들인 <카>(KA)의 경우 화살을 쏘는 장면, 수중 장면 등을 실감 나게 살려내는 IT 기술로 디지털 세대에게 어필한다. 그리스 신화 속 무지개에서 제목을 따온 <이리스>는 아날로그(서커스)와 디지털(영화)의 결합이다. 하지만 이 쇼는 영화보다 극한의 곡예에서 빛을 발했다. 트램펄린(탄력이 강한 매트, Trampoline)을 이용한 맨몸 낙하와 수직의 벽타기, 엔딩으로 펼쳐진 공중그네는 “태양의서커스의 본질은 곡예”라고 외치는 것 같다.

궁금증은 그 다음이다. 태양의서커스는 지난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마이클 잭슨: 불멸의 월드투어>(Michael Jackson: The Immortal World Tour)의 막을 올렸다. 12월이면 라스베이거스로 날아올 이 화제작은 팝의 제왕에게 바치는 록 콘서트다. 죽은 마이클 잭슨도 홀로그램(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했던 것) 디지털 기술의 형태로 무대에 선다. 가상현실(VR)을 장착한 미래형 공연인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2008년 무용수가 아바타와 춤을 추고 관객이 휴대전화로 참여하는 디지털 퍼포먼스 <신타지아>(Syntasia)를 만들었다. 국악 공연에 안드로이드 로봇이 나와 창(唱)을 하고 출연료를 받아가기도 한다. 배우와 로봇이 대화하며 교감하는 연극 <일하는 나>를 만든 일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는 “내면이 없는 로봇이 관객을 울리고 감동시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라며 “로봇 때문에 배우들은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했다.

TV와 영화, 컴퓨터와 모바일에 관객을 빼앗기면서 ‘연극의 죽음’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연극은 여전히 건재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공연과 IT의 결합은 장르 경계가 허물어지고 ‘통섭’이 강조되는 시대적 흐름과도 통한다. 이제 집에서 공연을 보는 시대도 온다. 정보통신공학 전문가들은 10년쯤 뒤면 가정에도 1Gbps 이상의 안정적인 인터넷망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한다. 홀로그램은 이르면 2020년대에 가정에 보급될 전망이다.

미국 UCLA에서는 지금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21세기 무대 언어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에 진행되고 있다. 인종, 성(性), 전쟁, 빈부 격차 등 여전히 유효한 이슈가 담긴 텍스트다. 공연에는 마커(marker) 없이 움직임을 바로 수집•저장할 수 있는 모션 캡처 기술, 아바타, 홀로그램 등 첨단 테크놀러지가 사용될 예정이다. 관건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균형 감각일 것이다. 태양의서커스의 <이리스>를 보고 <마이클 잭슨: 불멸의 월드투어>를 기다리면서 뒤숭숭해진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황금비율이란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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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자

  • 박돈규 _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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