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배요섭 연출가 _ 진리를 찾아가는 광대 2011-09-26
진리를 찾아가는 광대
[Who&Work] 공연창작집단 뛰다 _ 배요섭 연출

공연창작집단 뛰다(이하 뛰다)는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동기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한 극단이다. ''뛰다''라는 이름에 걸맞게 창단 이후 평단과 관객의 신뢰를 받으며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2010년 6월에는 단원과 가족들이 강원도 화천의 한 폐교로 ''창작공간''과 ''생활공간''을 옮겨 지역에서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이다 [weekly@예술경영]133호 뛰다, 화천에 정착하다<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는 2006년 <하륵이야기>, 2008년 <노래하듯이 햄릿>에 이은, 뛰다의 세 번째 팸스초이스 작품이다.


배우의 몸에 우주를 담다

Q: ''공연창작집단 뛰다'' ''화천 시골마을 예술텃밭'' ''노래하듯이 햄릿'' 같은 신선한 작명법의 비결이 궁금하다.

A: 우리는 제목을 정하는 데 재주가 없는 편이다. 대부분 이름 짓다 날 새고, 허망하게 돌아가곤 한다. 정작 좋은 이름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 며칠씩 혹은 몇 달씩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논쟁하고 투표도 하고 별 짓을 다해도 결정되지 않다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면 거짓말처럼 우리 손에 쥐어져있다. 그 이름은 누군가의 입에서 처음 나오긴 하지만 "바로 그것!" 이라고 모두가 외치는 순간, 그 아이디어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Q: 물리학도에서 창작자로 전환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유년시절 물리학과를 선택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돌이켜보니 물리학과 연극 혹은 창작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던가?

A: 우주의 근원이 궁금했다. 우주가 어찌해서 이렇게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그 어둠 가운에 별들, 행성들, 생명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것을 알 수만 있다면 그 생명들이 사는 이 지구와, 이 지구의 납득할 수 없는 지독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질문의 근원과 가장 가까운 것이 물리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물리학은 매우 논리적이고 경험론적인 학문이다. 물질에 근거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과 이론들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아득한 우주에 띄엄띄엄 떠있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다. 그것들을 연결하기 위해선 신화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때론 독실한 믿음을 요구할 때도 있다.

내가 연극을 하면서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배우의 몸이다. 물질적 토대로서의 몸. 그 안에 우주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믿고 탐구하고 있다. 그 몸을 벼리고, 달래고, 분석하고, 단련하여 좀 더 근원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하는, 악인이 선인을 단죄하는, 죽음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배요섭



광대와 맥베드

Q: 뛰다는 2005년 <노래하듯이 햄릿>을 만들면서부터 광대연기에 대한 훈련을 시작하였고, 2009년 ''국제광대워크숍'' 때 발표했던 작품이 <내가 말했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의 출발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 과정을 소개해달라.

A: 광대훈련은 <하륵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광대는 이야기와 관객을 연결해주는 메신저이다. 지난 십년동안 우리는 광대의 본질을 연구하고 훈련해 왔다. 그 와중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어바인(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의 교수 엘라이 사이먼(Eli Simon)을 알게 되었고, 몇 차례 만남 끝에 광대워크숍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는 일주일동안 우리와 머물면서 우리 배우들과 ''맥베스''라는 텍스트를 가지고 작업했다. 광대가 비극의 텍스트를 만나는 것을 처음 경험한 사이먼에게는 이 작업이 특별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배우들을 데리고 놀라운 이미지의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5일 동안의 연습만으로 40분짜리 작품을 선보였다. 그 결과물에서 영감을 얻어, 좀 더 그로테스크하고 음울한 작품으로 발전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맥베스는 사실 좀 식상했다. 별로 재미없었다. 맥베스는 현실을 지워버리기 위해 만들어낸 신화의 이미지다. 지워버리려고 했던 그 현실은 정권이 뒤바뀌는 과정에서 학살당한 민중들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그 현실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집중되었고, 배우들은 그것들을 음흉하게 파헤치는 광대가 되어야 했다.

Q: 워크숍 작품이 공연화되는 과정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작품을 발전시켰나.

A: 우리가 새롭게 선택한 2차 텍스트는 한국의 현대사였다. 배우들과 함께 한국전쟁 후 현대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맥베스는 무엇인지 되물었다. 맥베스는 단순히 권력에 대한 욕망에 잠식당한 독재자로 보인다. 그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이고, 미얀마의 탄 슈웨이며, 중국의 후진타오, 북한의 김정일, 수단의 오마르 알 바시르,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누가 있을까.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그 현대사 속에서 지워진 것들 중에서 우리는 80년 광주의 현실을 선택했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 자유경제라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지워버린 것들을 맥베스의 1차 텍스트와 함께 엮어내게 되었다.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맥베스는 사실 이것 이상이 아닌가 라고. 진정 너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좀 더 개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말했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Q: 무대, 의상 등도 좋았지만 특히 <내가 말했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에서 라이브 음악이 기억에 남는다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방식으로 창작자와 작업하는지 궁금하다.

A: 욤프로젝트와 함께 이 작업을 했다. 그들과는 두 번째 작업인데, 우리는 거의 즉흥으로 음악을 만들어 나간다. 그들은 즉흥에 매우 뛰어난 음악가들이다. 장면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함께 몇 가지 키워드들만 가지고 즉흥장면을 만들기도 하고, 때론 주어진 장면을 보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연주해가면서 음악을 만든다. 즉흥 연습 때 나온 음악들을 다듬고 발전시킨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버려진다. 이번에는 그들에게도 광대분장을 시키고 옷을 입혀 무대로 끌어내었다. 어차피 그들은 배우들과 한 통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배우들을 위해 연주하는 단순한 반주자가 아니라 배우들과 함께 객석을 향해 외치는 광대들이기 때문이다.


교류, 장인적 신뢰 속에서

Q: 2010년 화천 이주 후 첫 번째 창작 작업인 것으로 아는데, 화천 이주가 창작방식에 떤 영향을 주는가?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가.

A: 엄밀히 말해서 이 작품은 의정부에서 화천으로 넘어오는 과정 중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들에 둘러싸여 자동차 소음을 들으며 리서치 작업을 하고, 밑도 끝도 없는 즉흥의 시간들을 견디고 난 후 화천으로 이주했다. 매미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흙을 바르고, 나무를 깎고, 칠을 하며 여름을 보냈다. 고된 노동 끝에 마련한 작은 연습실 창밖으로 바라보는 자연은 이전보다 더 맑고, 더 높고, 아름다웠다. 평화로운 풍광과 부드러운 바람과 아득하고 자비로운 별들이 우리를 지켜주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인간의 탐욕스럽고, 더럽고, 처절하고, 잔인하고, 비열한 본성들을 만나야 했다. 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가며 우리는 그 심연을 헤매었다.

화천에서의 삶은 새로운 태도를 요구한다. 매일 아침 땅과 만나게 하고, 하늘을 우러르게 만들고, 들풀과 나무들을 살피고, 그리고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폐기물들을 직시하게 한다. 그런 후에야 연극이란 것이 시작된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견디지 못하게 된다. 연극은 그냥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다.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는 의미부족이다. 그 매일매일의 삶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바라보고 견뎌낼 수 있을 때 연극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의 일부로서.

Q: 뛰다는 국제교류 경험이 많다. 국내 관객이 아닌 해외 관객 그리고 해외 창작집단과의 교류가 뛰다에 어떤 의미를 주는 지 궁금하다. 국제교류를 막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준다면 무엇이 있을까?

A: 그동안 해외 관객들과의 만남은 제법 많았지만 해외 창작집단과의 교류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해외 관객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재평가 받았다. 다행히 그들은 호의적으로 우리를 받아들였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연극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해외 창작집단과의 교류는 뛰다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해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국내의 다른 단체와의 협업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창작의 방법론들을 꾸준히 실험하고 적립해 왔던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틀을 어느 정도 견고하게 쌓아 놓은 후에는 그 틀을 깨뜨리고 넘어서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때가 되면 그와 비슷한 고민의 선상에서 다양한 실험과 실패와 시도를 하고 있는 단체들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온다. 지금은 인도의 아다이샤크티(AdiShakti)극단, 일본의 버드씨어터(Bird Theatre), 한국의 트러스트무용단, 놀이패신명 등과 협업을 준비하거나 진행 중에 있다. 창작 메소드의 교환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서로 잘 맞으면 작품을 함께 만들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전 것과 다른 것이 만나 새로운 것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장인적 신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세밀한 것을 믿고 딛고 돋우는 것이어야 한다.

Q: 창작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세상에 전하고 싶은 가치나 메시지는 무엇인가?

A: 연극을 통해 나 자신이 진리를 보게 되길 바란다. 아르주나에게 나타난 크리슈나처럼. 연극으로 살아온 내 삶을 통해 그 모든 것을 보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아르주나와 크리슈나 : 인도 경전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인도 신. 무사인 아르주나가 무인으로서의 자신의 운명과 전쟁의 가혹함에 괴로워하자, 비슈누의 화신인 마부 크리슈나가 승리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고 조언과 충고로 그를 가야 할 길로 이끌었다는 이야기.


관련 링크:

|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작품정보  바로가기
| 공연창작집단 뛰다 단체소개   바로가기
| 더아프로 [Who&Work] Performance Group Tuida: Running with the Spirit of Nature   바로가기
  • 기고자

  • 임은아 _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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