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고선웅 연출가 _ 철 들어가는 재담꾼 2011-09-15
철 들어가는 재담꾼
[Who&Work] 극공작소 마방진 _ 고선웅 연출

고선웅은 다재다능하다. 연출가와 작가를 기본으로 연극, 뮤지컬 등의 각색도 한다. 2005년 12월 극공작소 마방진을 창단하여 대표로, 2010년 9월부터는 경기도립극단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물론 그가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극공작소 마방진이다. 2011년 팸스초이스로 선정된 <칼로막베스>는 마방진 창단 5주년 기념작으로 2010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초연되었다. <칼로막베스>를 통해 고선웅은 처음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권위에 눌리고 싶지는 않았다”

Q: 우선 호칭 정리를 좀 했으면 한다. 작가나 연출 중에 어떤 호칭을 선호하나.

A: 고 연출이라는 말보다는 고 작가가 나은 것 같다. 고 연출은 뭔가 연출되어야 할 것 같은데, 고 작가는 소리가 좀 덜 상스럽지 않나?(웃음) 상대방도 편하고. 작가는 연음이 돼서 종성이 죽는데 연출은 종성까지 발음하려면 입모양이 되게 정교히 작용해야 한다.


Q: <칼로막베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A: <칼로막베스>는 마방진의 창단 5주년 기념 연극으로 만들었다. 마방진 단원들이 몸 쓰는 것을 좋아한다. <맥베스>를 하되, 그냥 하기는 밋밋하니까 막베스, 그리고 칼도 들면 좋겠다, 해서 <칼로막베스>가 되었다. <칼로막베스>를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어떻게 관객에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였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다룬 많은 작품들이 원작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다가 대사나 줄거리가 어려워지는 경우들이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권위에 눌리고 싶지는 않았다.





Q: 마방진표 연극은 재미있고, 스타일리시하고, 입담 좋은 연극으로 브랜드화된 것 같다. 한편 ‘지나친 입담으로 보는 관객이 숨쉬기 어렵다’ ‘비움과 절제의 형식미학이 아쉽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A: 우리 연극에는 극사실주의나 사실주의를 믿는 분위기가 있다. 분명히 가치가 있지만, 사실주의 연극을 하는 것이 옳다고 주창하기에는, 나에게는 재미가 부족하고 질린 느낌이 있다. 감동을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서게 된다. 강요된 감정에 동화되지 않게,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정확한 사실을 관객에게 주면 관객이 스스로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비틀어서 접근한다. 진실한 말이지만 표현은 덜 진실했으면 좋겠다. 마방진 스타일은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거다. 연극이라는 것은 양식을 갖지 않으면 무대언어로 존재하기 힘들다. 우리의 무대언어가 아직은 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신춘문예 당선소감에 ‘배우들이 좋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썼고 내가 갖고 있는 모토도 ‘배우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배우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출이 되자’는 것인데 배우가 아니라 연출이 보인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내 대본의 분위기나 흐름이 튀는 편이어서 그에 휘둘려 그렇게 보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정리되어가고 있는 과정이고 배우들도 궤도에 올라서 말이 빨라도 여유있게 변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철이 들고 있다. ‘비움’과 ‘절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민을 한다. 많이 비우려고 한다. 젊었을 때는 계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들이 좋아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갖고 있는 박자와 리듬으로 가다보면 조금씩 급해지고 자꾸 더 챙기려고 하게 된다. 앞으로 계속 비워보려고 하는데 몇 년은 더 걸릴 것 같다.


Q: 마방진만의 스타일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고 보나?

A: 창단 후 극단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마방진적 메소드를 구현하기 위해 실험하고 모색해 왔다. 지금도 역시 과정 중에 있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운신하는 방법과 발성법, 무대에서 존재하는 철학적 태도 등에 있어서 근력이 붙는 중이다. 그간의 작업들로 동양 특유의 액션과 파워풀한 화술에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었다고 본다. 지금도 배우들의 말이 너무 빠르다는 얘기를 듣는다. 배우가 정확한 말과 감정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관객들은 굉장히 쿨하고 좋은 연극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직 과도기라 훈련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내부의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고, 그 안에서 미덕을 살리며 계속해 조율하는 중이다.


Q: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 성향 상, 해외진출에 대한 의지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대본이 애초에 의도한 바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는 없나.

A: 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작품을,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무척 재미있게 본 경험이 있다. 그때 ‘아, 말이 들리지 않고 이해가 안 돼도 상관없구나’하고 깨달았다. 반드시 어떤 것을 알아들어야 이해를 한다거나 이해를 못하면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소리와 무대와 배우들의 연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할 때도 있다. 물론 문화의 맥락에 맞는 자막을 만드는 건 중요하다. 연출에 있어서도, 어색하더라도 배우들에게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게 하여 극중에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해외와의 작업은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셈이라 아마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이 있을 것 같다.


<칼로막베스>




모두가 즐거워야 연극이다

Q: 극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그로토프스키가 “좋은 연극이란 그냥 보면 ‘아, 이게 좋은 연극이구나!”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참 인상적이다. 좋은 연극이 뭐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보면 ‘아, 좋은 연극’이라는 거다.

연극의 본질은 표현인데, 무대에서 표현할 가치가 있는 것을 재미있고 즐겁게 표현하는 것 같다. 표현할 가치가 있는 것을 재미있고 즐겁게 표현하는 것, 노는 것 그 안에 모든 게 답이 있는 거 같다. 재미나 즐거움, 놀이, 이런 개념에는 ‘연습’이라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쳐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무대에서 빛나기 위해 연습이 고달프고 힘들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인생에서 목적만 달성하기 위해서 과정을 무시하겠다는 것과 같다. 연습하는 7월에도 공연을 올리는 8월에도 내내 행복해야 하는 거다. 8월의 행복을 위해 7월에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연극이라는 과정, 연극이라는 작업에는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연습도 행복하고 공연도 행복할 수 있는, 그렇게 작업할 가치가 있을 만한 이야기가 무대에서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남이 봐서 표현할 가치가 있고, 재미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그런 것 아닐까?


Q: 그렇다면 연극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A: 옛날에는 폭력으로 소외된 사람들, 폭력의 피해자 같은 결핍된 캐릭터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쏟아 내거나 아니면 밖에서 안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대에 에너지를 가진 역할이 생기고 그 인물은 주변의 평형감각을 깨버리고, 그 깨져버린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액션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인물을 세팅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보다는 사랑, 존경, 신뢰, 관계개선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미덕들에 관심이 간다. 성실, 근면, 협동 등 아주 진부하지만 그것들이 인간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Q: 변화의 계기가 궁금하다.

A: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치열하게 연극을 하면서 ‘도대체 어떤 연극을 해야 되나’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연극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잘난 척하려고 아이디어 내고 철학 없이 단순히 놀려던 생각에서 공감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었다. 철이 든 거다, 연극에 대한 철.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의 ‘재미’가 주관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은 모두(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가 재미있어하는, 적어도 참여하는 사람들이 같이 재미있고 즐거워하는 이야기와 상황을 추구하는 것 같다.

마방진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마방진을 처음 만들 때는 마방진만의 스타일, 언어, 어법 등 다른 극단과는 차별화되는 우리 극단만의 무언가를 가지려고 했다. 막상 극단을 만들고 보니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더라. 우리를 지탱하는 데는 사랑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이 없는 연극 작업은 너무너무 어렵다. 10년, 20년 넘게 극단을 운영해 오신 선배들이 하늘처럼 보인다. 그냥 옆집 아저씨 같아 보이지만, 극단을 운영하고 유지해 오셨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일 년이 장난이 아니다. 다른 어떤 말도 필요 없이, 그냥 대단한 일이다. 나에게는.


Q: 주어진 상황에서 뭔가를 선택하시는 편인지, 계획을 하고 추진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달라.

A: 계획이라니, 한치 앞도 볼 수가 없는데. 살아보니 한치 앞을 볼 수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매순간순간을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다. 우리 단원들하고 내가 지치지 않게 그냥 연극을 하면서 살고 싶다. 우리 단원들이 일 년에 반은 나와 작업하고, 반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내가 지금 바라는 꿈이다.

관련 링크:

| <칼로막베스> 작품정보  바로가기
| 극공작소 마방진 단체소개  바로가기


  • 기고자

  • 임은아 _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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