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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의 환경극장 - 도시 전체를 무대로! 2010-11-30

마카오의 환경극장
-도시 전체를 무대로!


장혜원
국립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교수


마카오 공연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들 그 생태적 환경의 특성으로 정규 공연장의 부족, 공연예술 종사자의 절대다수가 비전문 인력인 점, 커뮤니티 씨어터의 활성화 등을 꼽는다. 직업극단이 거의 없고, 다른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소위 주류공연, 상업극, 실험극 등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였으며, 또한 고정 관객층의 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공연이 일부 존재하는 소극장이나 대안공간 혹은 야외를 비롯한 여러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연극, 혹은 장르를 불문한 환경극장은 하나의 대안의 개념으로 출발하였음에도 현재는 마카오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가장 큰 특징으로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카오극장지도


몇 해 전부터 마카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생활예술, 전성무대(生活藝術, 全城舞臺)’ 중, ‘도시 전체를 무대로’라는 캐치프레이즈에서 보듯이 이제 마카오에서 정규 공연장 내의 프로시니엄 무대는 단지 공연이 가능한 여러 장소 중 하나일 뿐, 특별한 우월적 지위를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도시 전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간의 범위까지 포함하는 것일까.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공장터나 창고, 공원, 길거리, 갤러리 정도는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느껴질 만큼, 이동하는 버스 안이나 물을 빼낸 수영장의 풀 안, 루프탑의 바, 개인저택의 정원, 항구, 구식 대포가 남아있는 산꼭대기, 심지어 에스컬레이터 등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공간들이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리처드 셰크너가 ‘환경연극(Environmental Theater)’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하면서 다루었던 극 미학상의 변혁, 연기자와 관객 그리고 기타 극장요소간의 직접적 교류, 능동태로서의 관객, 공연에 있어 대본 텍스트 자체가 반드시 출발점이나 종착점일 필요는 없다는 것 등의 특징들이 마카오 환경극장에도 적용되어 왔음은 물론이다. 그 외에 마카오 환경극장에서 더 두드러진 특색이라면 주로 공공의 장소, 유휴공간을 활용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는데, 이 부분에서 마카오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유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면적으로는 제주도의 반에도 못 미치지만, 아시아와 서양 문물 교역의 중심항로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던 만큼, 두 개의 섬과 반도 하나로 이루어진 이 작은 섬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무려 25곳이 있다. 약 400년간 이어진 포르투갈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중국과 포르투갈이 건축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매력을 지닌 공공의 공간으로는 성바울 성당의 유적, 세나도 광장, 기아 요새 등이 있는데, 이러한 공간이 단지 관광의 대상이 아닌 공연의 장소로도 쓰이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마카오의 환경극장은 단지 공연장 부족의 해결만을 위한 방편이 아닌, 공간과 공간을 둘러싼 환경, 역사성을 충분히 살리고 있는데, Jardim Lou Lim (?廉若公?)이라는 공원에서 3일동안 펼쳐진 베이징 LDTX 컨템포러리 무용단의 <대관원(大觀園)을 찾아서> 공연도 그러한 예이다. 이 Jardim Lou Lim 이라는 공원은 1992년 마카오 신팔경(新八景)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공원이라기 보다는 화원에 가까운 이 곳은 Lou Lim 이라는 마카오 부호의 개인 정원으로 1904년에 짓기 시작해 1925년에 완성되었고, 후에 마카오 정부에서 사들여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LDTX 무용단이 공연한 <대관원을 찾아서> 는 중국 4대 명저의 하나인 소설 홍루몽의 무대가 된 대관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무용수들이 가보옥, 임대옥, 설보차 등 등장인물로 분하여 이 거대하고 한 폭의 그림 같은 정원의 곳곳을 이동하며 비극적 사랑을 표현한다. 실제 봉건 시대 상류계급의 화려한 생활과 말 그대로의 ‘붉은 누각의 꿈’을 표현하기에 이 이상의 공간은 없었을 것이다.


홍루몽공연장


또한, 환경극장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90년대 중반에 Comuna de Pedea 극단이 공연했던 작품들을 살펴보면, 당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입법선거를 풍자한 <식사대접>이라는 연극을 시의회 건물 앞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1999년 중국반환 전야에 시 중심에서 의회 앞을 통과하며 <오늘밤 우리는 걷는다>라는 거리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마카오 환경극장이 활성화되면서 생겨난 또 하나의 개념은 ‘유동극장’인데, 이것은 실내가 되었든 야외가 되었든 고정공간에서 공연하는 것이 아닌,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이동하면서 만들어내는 공연을 말한다. 예를 들어 90년대 마카오실험극의 주요인물인 천보티엔의 <귀혼진명곡>은 유럽식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청소년센터에서 상연되었는데, 3막으로 구성된 이 극은 각각의 막이 센터 내의 각기 다른 공간에서 공연되며, 관객들은 공연의 흐름에 따라 센터 전체를 이동하며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이동의 개념이 이보다 좀 더 확장된 경우인 Hui Kok 연극발전소의 마카오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 <버스에서의 기이한 인연>은 실제 운행중인 시내 버스에서 진행되었는데, 승객들은 극의 일부분으로 극중 관객의 역할을 맡게 되고, 배우들은 버스가 이동하면서 각각의 정류장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양한 군상을 통해 풀어낸다.   


이렇듯 매 장소가 흥미로운 공공의 공간인 환경극장의 작품들을 동일 시기에 대거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역시 마카오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이미 마카오의 관객들에게는 축제 기간 도시의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공연 공간을 발견하고, 상호 작용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 익숙한 여정이 된 것처럼 보인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모 한국작품의 공연을 위해 엄청난 크기의 수영장의 물을 빼내고 있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필자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이 공연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다소의 불안함과 궁금증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아주 어린 아이부터 다양한 관객층이 함께 어울려 공연에 참여하고 마지막에는 그 큰 풀 안에서 모두가 기차놀이를 하며 춤을 추는 것으로 공연의 뒤풀이까지 하게 되었으니 현지 관객에게나 참여한 해외 아티스트에게나 잊을 수 없는 유쾌한 경험이 된 것이다. 이렇듯 환경극장, 혹은 유동극장의 공간 자체는 마카오 사람들의 일상생활 환경, 문화환경에서 온 것이되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시공의 체험을 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정규공연장에서 찾을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현지의 창작자와 관객 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남미 등 전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이 공히 느끼고 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환경극장에서 이루어지는 작품 자체의 특징들을 관찰해보면 자유로움과 개방성, 비정형성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데, 작품의 모티브와 기본이 되는 골격은 존재하지만 유기체처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나가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마카오에 거주 중인 다국적 아티스트들의 합작프로젝트인 는 아주 작은 아이디어로 출발, 마카오의 한 루프탑 바에서 첫 선을 보인 뒤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 다른 버전으로 공연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환경극장 작품이다. 연출가는 어느 날 신축중인 고층빌딩을 바라보며 자신의, 또 우리들의 대도시에서의 삶을 반추해 보며 점점 좁아지는 하늘과 푸른 대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서는 오래 전부터 휴가계획을 세우고, 여행경비를 저축해야 하는 도시의 삶, 당장 멈출 수 없는 성장과 진보라면 좀더 유머러스하고 열려있는 태도로 이것을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그랬을 때, 상상속에서 공사중인 건축물조차 커다랗게 포장된 선물상자로 변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즉흥무용과 라이브연주, 수묵을 이용한 멀티미디어를 주요한 요소로 사용하여 사람과 풍경, 환경 간의 직접적이고도 자유로운 다이얼로그를 시도한다. 작품이 공연되는 공간에 따라 풍부한 이야기들이 덧대지며 때로운 장난기 어린, 때로는 진지한 언어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이 작품은 마카오의 바, 수영장, 북경의 유명 예술특구인 798의 건물, 쑤저우의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현지 무용수들과의 협업으로 선보였으며, 2011년에는 한국에서의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Playing Landscape


생활공간이나 야외의 특정 장소가 아닌 유휴공간을 개조해 대안예술공간으로 재탄생 시켜, 이제는 거의 정규공연장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곳으로는 재미있는 명칭의 Old Ladies’ House Art Space, Poor Space(수공예품, 중고예술서적판매, 전시, 공연), Ox Warehouse(외양간을 개조), Theater Farm, Pin-to Livros& Musica(서점, 소형음악회) 정도를들 수 있다.


최근 마카오에서는 도시개발로 인해 공간 자체로 이미 역사성과 연극성을 지닌 유휴공간들이 점점 축소되거나 세련된 현대식 빌딩으로 탈바꿈한 경우도 많으며, 그로 인해 새로운 환경극장의 장소가 될 곳을 발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간 예술가들에게는 새로운 영감과 창작의 플랫폼을 제공하고, 관객들에게는 보다 풍성하고 참신한 예술체험을 가능하게 했던 다양한 환경극장의 형태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마카오 공연예술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작용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 기고자

  • 장혜원 _ 국립안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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