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테아터 데어 벨트 프로그래머, 프리 라이젠 2010-10-01

테아터 데어 벨트 프로그래머, 프리 라이젠


인터뷰 및 정리: 신민경 (워릭 대학교/암스테르담 대학교 석사과정)


- 테아터 데어 벨트 최초 비독일인 프로그래머.
- 벨기에 싱겔극장 예술감독 역임.
- 쿤스텐데자르 페스티벌 창설 및 예술감독 역임.
- 영아랍씨어터펀드의 미팅 포인트 페스티벌 예술감독 역임.

이상이 유럽공연예술 현장에서 컨템퍼러리에 대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냈다고 평가받으며, 세계 여러 프로듀서들이 롤모델로 고백하는 프리 라이젠(Frie Leysen)의 이력이다. 세계극예술협회(International Theatre Institute, ITI)에서 매년 주관하는 테아터 데어 벨트(Theatre Der Welt. 독일어로 ''세계 연극 축제''라는 뜻)의 프로그래머로 첫 축제를 올린 프리를 독일의 작은 마을, 뮐하임에서 만났다.


축제의 몇 개 작품이라도 본 후에 인터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인터뷰 날보다 사흘 먼저 도착했다. 그런데 막 하루 전에 개막한 축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번 축제에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현대무용을 소개하는 싱가포르 프로듀서 푸켄이 개막일에 독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싱가포르 공연자들을 위협한 작은 방화 사건이 있었다고 슬쩍 귀띔을 해주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여파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민을 제한하는 법을 입안하고, 외국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사회 분위기 탓이었다. 게다가 축제도시인 독일의 에센과 뮐하임은 2010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기 전까지 문화적으로 소외된 산업도시였고, 최근 들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외국인에 대한 배격심이 높아진 상태였다. 다행히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 때문에 축제 관계자, 공연자 모두가 긴장해 있었던 것이다. 인터뷰 전까지 사흘 내내 프리를 공연장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백스테이지와 프론트 하우스를 바쁘게 오가며, 공연이 순조롭게 시작하는 걸 확인하자마자, 프리는 다음 극장으로 바람같이 사라지곤 했다. 프리의 젊은 비서, 마크는 삼십대인 자기가 예순이 넘은 프리의 에너지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를 찾는 전화벨이 계속 울리자, 마크는 두 손, 두 발 다 든 표정으로 "저도 어디 있는지 몰라요. 전화할 시간에 지금 공연이 있는 극장으로 가보는 게 나을 겁니다. 틀림없이 거기에 계실 테니까요."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한 달 전에 약속을 잡아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 기막힌 분을 만날 수 있는 인터뷰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테아터 데어 벨트 축제 본부에서 비서나, 홍보 담당자도 없이 혼자 나온 프리는 매우 지쳐 있었다. 개막 첫 주를 정신없이 뛰어다녀 초췌해진 영락없는 축제스탭이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음료라도 사오겠다는 나를 잡아 앉히며, 손님을 그렇게 대접할 수 없다고 본인이 직접 맥주와 물을 가지고 온 후에 인터뷰가 시작됐다.


“내게 있어서 컨템퍼러리란, 예술가들이 동시대에 목격하고, 생각한 것들을 자신이 선택한 이 시대의 수단으로 표현한 모든 것을 뜻한다.”


프리 라이젠_photo credit_Diana Kuester


Q. 축제 프로그램에 실린 프로그래머의 노트에서 ''테아터 데어 벨트''는 세계의 컨템퍼러리 예술가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1980년대의 안트워프의 싱겔극장, 90년대 브뤼셀의 쿤스텐데자르, 2010년, 현재, 독일의 테아터 데어 벨트에 이르기까지 현대 공연예술의 역사에서 ''컨템퍼러리''의 새 영역을 구축한 기획자로 평가받고 있다. 당신에게 ''컨템퍼러리''란 어떤 뜻인가?


기획자로 살면서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던 화두는 바로 그 ''컨템퍼러리''의 의미였다. 형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소통언어(new language)''를 쓴다는 뜻과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내용적인 면 두 가지 모두를 함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적인 면에서의 컨템퍼러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예술가의 ''동시대성(contemporariness)''이다. 보통, 미학적인 면에서 작품이 컨템퍼러리냐, 아니냐를 따지지만, 나는 예술가의 태도를 본다. 우리와 함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이 살면서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컨템퍼러리의 비전(vision)이 된다. 여기에서 형식적인 장르나, 규범은 중요하지 않다.


쉽게 설명하면, 여기에 물이 담긴 투명한 유리컵이 있다. 그리고 나와 당신이 동시에 이것을 본다. 나는 이쪽에 앉아 컵에 투영된 세상을 본다. 당신은 반대편에서 다른 쪽의 세상을 본다. 나는 위에서 아래로 컵을 볼 수도 있고, 당신은 아래에서 위로, 또는, 사선으로 볼 수도 있다. 컵의 표면이 내 시선을 붙들 수도, 당신은 그 안에 담긴 물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있지만,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목격하는 것이 다르다. 하물며, 본 것을 설명해야 할 때, 다른 표현법을 사용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이치다. 내게 있어서 컨템퍼러리란, 예술가들이 동시대에 목격하고, 생각한 것들을 자신이 선택한 이 시대의 수단으로 표현한 모든 것을 뜻한다.


Q. 이번 축제에는 유난히 영상(screening)과 결합한 퍼포먼스 작품이 많았다 - 베를린의 <태그피쉬(Tagfish)>, 윌리엄 켄트리지의 <나는 내가 아니고, 그 말은 내 말이 아니다(I''m not me, the horse is not mine)>. 관객 사이에서도 영화제에 더 어울릴 법한 작품이었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안트베르펜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베를린’은 예술계 동료들에게 꼭 만나보기를 추천하는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그룹이다. 그런데, ''그들이 만드는 건 영상이지, 퍼포먼스가 아니다, 씨어터 페스티벌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러면 난 공연예술만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즉시성(liveness)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묻는다. 과거 연극전통에서 즉시성은 배우들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믿었다면, 지금의 연극, 적어도 내가 정의하는 씨어터의 범주에서 다른 구성요소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베를린의 작품이 컨템퍼러리 씨어터인 이유는 배우가 아닌, 영상이라는 수단으로 즉시성을 만들기 때문이다. 백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베를린의 작품은 영화관처럼 하나의 스크린을 통해 보고 싶은 만큼 반복해서 ''상영''할 수 있는 종류의 예술이 아니다. 베를린은 작품을 ''공연''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개의 스크린을 동원해 특별한 ''무대''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윌리엄 켄트리지의 공연도 그가 직접 편집한 영상에 무게중심이 있지만, 그가 직접 출연한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와 영상이 결합한 형식이어서 평단이나, 관객의 장르에 대한 공격이 덜한 편이었다고 느꼈다.


* 인터뷰 후에 우연히 만난 베를린 팀은 그들의 작품이 ''영화''가 아니라는 걸 본의 아니게 벨기에 영상위원회의 기금지원심사에서 확인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 공연과 영상 간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한 장소에서 복수의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작품은 제작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영화''로 보지 않는다''는 새로운 규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Q. 당신이 소개하는 작품들은 실험적(experimental), 급진적(radical)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일반인의 문화나, 사회에 대한 고정관념, 편견, 클리셰를 깨는 작품들이 많다고들 한다. 작품에 대한 관객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는 프로그래머로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글쎄... 내가 소개하는 작품들이 실험적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급진적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인터내셔널을 표방한 축제나 문화행사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유럽 사람들은 유럽 밖의 문화에 무지하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의 사회에서 상식적이고 당연한 표현도 이곳에서는 다른 식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급진적인 예술이 정치적일 것이라는 일반인의 오해이다. ''급진적''이라는 단어는 여러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주변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품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절박함을 지닌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나를 봐달라고 말하는 예술가들이다. 


최근에 세계 경제 위기가 가져온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유럽 문화예술계의 장벽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세계의 문화가 충분히 섞였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여기의 관객들이 더 많은 유럽 밖 문화와 예술을 접할 때까지 계속 소개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과의 소통이 단번에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를 애당초 접는 것이 중요하다. 그건 5년, 10년 이상의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싱겔극장에서 10년이 넘게 프로그래머로서 관객과 신뢰를 쌓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쿤스텐데자르 페스티벌은 관객을 이해시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처음에 변신을 모색하는 이 축제, 테아터 데어 벨트의 프로그래머 제안을 받았을 때, 5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첫해의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래도 프로그래머로서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더라. 개막 전까지 잠을 못 이루고, 일에 몰두했는데, 어느 날 보니, 사람들이 와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개막 첫주가 끝나가는 지금에서야, 축제가 개막한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평가는 축제가 끝난 후의 몫이다.


Q. 축제 프로그램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눈에 띄었던 점은 보통 작품명을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디자인하기 마련인데, 예술가의 이름이 그 자리를 선점하고, 굵은 글씨로 강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의 결정이라고 들었다. 어떤 의도인가?


예술은 일회적으로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개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를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예술가의 연속성에 따라 작품을 평가해야 한다. 프로그램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면, 예술가의 이름 옆에 국가가 아니라, 활동하고 있는 도시(그곳은 태어난 도시가 될 수도 있고, 이주한 곳이 될 수도 있다)를 표시했다. 이민이 증가하면서 국가 간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출생 국가와 활동 국가가 다른 아티스트들이 너무 많다. 나는 예술가가 국적에 따라, 순수한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느 예술가가 한국에서 왔다고 해서 현재의 한국을 대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Q. 당신은 벨기에 국적을 가진 유럽 사람이고, 계속 서유럽의 주요 도시를 근거지로 활동했다. 하지만 항상 유럽 바깥에 관심을 가지고, 인도네시아 페낭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다양한 세계 예술가들을 삼십 여 년이 넘게 축제와 극장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소개해 왔다. 왜 그러한 기획 철학과 관점을 가지게 되었는가?


유럽에는 아직도 제국주의 시대의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다른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 클리셰에 빠진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축제 프로그래밍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유럽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젊은 예술가들은 아까 말한 유리컵처럼 투명하게 다양한 관점에서 시대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개념을 정의하고, 좋은 공연과 나쁜 공연(good and bad theatre)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거장(the master)의 작업과 거리가 멀다. 평생 가지고 있는 기획에 대한 소신은 미래에 활동할 다음 세대 예술가를 돋보이게 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세계 어느 도시에서, 또는,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을 젊은이들을 찾기 위해서 나를 포함한 모든 기획자들은 더 많이 여행하고, 많이 보고, 많이 실망하고, 많이 예술가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유럽에서 태어나 여기에서 활동하는 기획자로서 유럽 중심주의(Euro-centric) 사고에 젖어있는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서양 중심주의와 반대되는 인터내셔널리즘을 기획하는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유럽에 알려지지 않는 예술가들을 찾아내서 소개하고 있다.


테아터 데어 벨트photo credit_Diana Kuester


Q. 2007년에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미팅 포인트(Meeting Points)는 유럽에서만 활동하던 당신에게 중동이라는 새로운 포커스를 준 것 같다. 유럽인인 당신이 어떤 배경으로 아랍권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영 아랍 씨어터 펀드가 주관하는 미팅 포인트는 그 자체로 특별한 축제이다. 원래 작게 시작했던 행사가 광대한 중동을 대상으로 삼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성장한 축제이다. 모로코, 이집트, 팔레스타인, 베이루트, 시리아에 이르기까지 아랍은 넓다. 이 축제를 처음 기획한 영 아랍 씨어터 펀드와는 이미 친분이 두터운 동료였다. 프로그래머의 제안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내가 맡았던 2007년의 행사는 유럽과 아랍의 11개 도시를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아랍이라는 지역은 이미 국가에서 도시에서 인터내셔널 공연예술계의 축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세계 공연예술계의 흐름이기도 하다.


“예술가가 항상 기대 이상의 작품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예술가의 작품(work)은 공산품(product)이 아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기획자가 예술가에 대한 신뢰를 가져주는 것이 중요하다.”


Q. 당신은 마르지 않는 예술가의 풀을 가지고 있는 기획자로 잘 알려져 있다. 어떻게 광범위한 지역의 예술가들을 알 수 있고,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시킬 수 있었는가?


난 여행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할 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더 많이 여행하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질문해야 한다. 여러 작품을 보다보면, 실망할 때가 더 많다. 그러다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예술가가 짠하고 등장한다. 그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한 번 인연을 맺은 예술가와는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리고 예술가가 항상 기대 이상의 작품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예술가의 작품은 공산품이 아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기획자가 예술가에 대한 신뢰를 가져주는 것이 중요하다. 


Q.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을 만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인터내셔널 예술축제와 아트마켓도 많이 방문했을 것 같다. 특별히, 아트마켓이 당신이 생각하는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마켓''이라는 컨셉 자체를 싫어한다. 내게는 ''작품'' 자체보다 ''예술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켓에서는 예술가를 그가 살고 있는 사회(community)에서, 맥락(context)에서 만날 수 없다. 물론, 아트마켓이 가진 장점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유럽과 유럽 밖의 세계는 아직도 벽이 존재하고,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마켓이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Q. 2006년, 서울문화재단의 초청을 받아 서울아트마켓(PAMS)를 방문했을 때, 한국과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후에, 개인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가? 한국의 어떤 예술가들에게 관심이 있는가?


바로 전의 질문과 이어진다. 2006년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아쉬운 점이 많았다. 공식일정에 쫓기다보니, 정작 예술가들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 내가 말하는 만남은 마켓의 부스에서 훑어보는 식이 아니다. 그들의 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보고, 백스테이지에서 얘기를 하고, 다 못한 이야기는 술자리에서도 하고, 그들의 워크숍이나, 리허설 공간을 찾아가고 싶었다. 첫 한국 방문에서 기획자들과 행정가들은 많이 만났지만, 다음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한국의 예술가들이다. 이후에 지금까지 한국을 갈 기회가 없었다. 이웃인 일본은 자주 가는 편이다. 지금은 한국의 컨템퍼러리에 대한 아무런 그림이 없다. 좋은 예술가나, 작품이 있으면, 꼭 알려 달라. 더 알고 싶다. 


한 시간 남짓 진행한 프리와의 인터뷰는 여러 번 많은 사람에게 방해를 받았다. 다음 이동 경로를 확인해야 하는 비서, 어제 공연에 대한 프리의 의견이 궁금한 예술가, 다음 프로젝트를 의논하고 싶은 다른 축제 프로그래머,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 사람 등. 모두 인터뷰 중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듯 했다. 프리는 그 사람들을 모두 응대하며, 인터뷰가 중단된 것을 연신 사과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부분 짧게 갈무리했지만, 예술가의 경우는 어떤 얘기든지 끝까지 듣고,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서 답변을 해주었다. 프리는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어떤 인터뷰나, 일도 예술가와 대화하는 것보다 우선순위일 수 없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내가 어느 공연을 보러 가는지 확인한 프리는 공연장이 외곽에 있어 찾기 어려울 거라며 본인이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바쁜 시간 뺏을 수 없다고 손사래 쳤지만, 손님에게 이건 당연한 일이라며 자기 차에 오르라고 손짓했다.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프로그래머의 차는 오래돼 보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소형차였다. 오랫동안 이 차로 안 다닌 곳이 없다고 자랑하면서 프리는 안전하게 벨트를 매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본인은 정작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미소로 답하셨다. “난 안 매는 게 습관이 돼서.” 프리는 프로그래밍만 급진적인 게 아니라, 드라이빙도 급진적이었다. 낡은 GPS의 오작동으로 5분이면 갈 거리를 15분 동안 헤매자, 프리는 공연에 늦을까봐 노심초사했다. 절대 공연에 늦지 않게 할테니, 걱정 말라며 액셀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늦어도 좋으니, 제발 천천히 운전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쏙 들어가고, 대신 손잡이를 꼭 붙들었다. 결국, 공연 5분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개막일에 방화사건이 있었던 싱가포르 팀의 그 공연장이었다. “거봐, 안 늦었지. 좋은 공연이야. 얼른 들어가서 좋은 자리 잡으라고. 나는 상황만 점검하고, 다른 공연장에 가봐야 해서.” 그리고 예순 살의 백발이 성성한 프리는 손을 흔들며, 백 스테이지로 뛰어갔다.


1)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에서 언급한 극장과 축제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관련 웹사이트를 정리한다.

싱겔극장(De Singel) 벨기에 앤트워프의 제작 중심 공연예술센터. 얀 파브르, 로메오 카스텔루치 등 현대공연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플레미시 아티스트들을 발굴해 소개한 극장으로 유명하다. http://www.desingel.be

쿤스텐 데자르(Kunstenfestivaldesarts) 벨기에 브뤼셀의 현대공연예술축제. 매년 6월에 열리며, 유럽에 알려지지 않은 세계 여러 나라의 컨템퍼러리 예술가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축제로 평가받는다. http://www.kfda.be

영아랍씨어터펀드(Young Arab Theatre Fund, YATF)와 미팅 포인트(Meeting Points)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랍 문화권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가 있으며, 미팅 포인트를 매년 개최하면서 유럽과 중동의 아랍 문화권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영아랍씨어터펀드의 지속적인 활동은 최근 유럽 예술계의 중동 문화에 대한 관심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http://www.yatfund.org/, www.meetingpoints.org

테아터 데어 벨트(Theatre Der Welt) 1981년부터 세계극예술협회 독일 본부에서 주관하고 있는 연극 중심의 공연예술축제이다. 최근에 들어와 연극의 범주가 퍼포먼스로 확대됐으며, 2010년 6월 30일부터 7월 17일까지 독일 에센과 뮐하임에서 개최되었다. http://www.theaterderwelt.de/


2)베를린은 벨기에 안트베르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으로 2003년부터 세계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영상과 결함한 공연을 완성하는 도시 연작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다. http://www.berlinberlin.be/


3)윌리엄 켄트리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세계적인 애니메이터이다. 요하네스버그의 인형극단, 핸드스프링 퍼펫 컴퍼니와 공동으로 만든 <보이체크>는 세계 여러 축제에 초청되었으며, 그 후에도 꾸준히 함께 작업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 내셔널 씨어터가 제작하고, 윌리엄 켄트리지와 핸드스프링 퍼펫 컴퍼니가 참여한 <워호오스(War Horse)>의 성공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높였다. http://www.handspringpuppet.co.za/

  • 기고자

  • 신민경 _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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