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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극계의 새로운 조류, 제로세대 2010-09-10

일본 연극계의 새로운 조류, 제로세대


글: 기무라 노리코 (공연예술 기획자)


최근 연극, 영화, 문학, 음악 등 각 예술장르에서 ‘제로세대’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제로세대’란 1906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사이에 태어나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세대를 이르는 말로, 각 장르에서 특정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세대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쪽에서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유키사다 이사오(68년생), <소년 메리켄사쿠>의 구도 칸쿠로(70년생) 등이 ’제로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인데, 이들이 등장함으로써 2000년 이후 일본 영화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이야기된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공감대, 그리고 만화나 음악 등을 복합적으로 수용한 팝 컬처화 등에 의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재팬 스탠다드 영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연극계도 그러하다. 경쾌하고 재치 넘치며 예리한 언어감각으로 희곡뿐 아니라 라디오드라마 대본, 소설, 수필 등을 속속 발표해온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 1970년대에 <아타미살인사건>으로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데뷔한 후 일본의 연극씬을 크게 변화시킨 재일극작가 츠카 코헤이(한국명 김봉우) 등 일본 연극계의 두 거장 극작가가 올해 들어 타계하며 일본 연극계의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한 듯한 느낌을 줬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제로세대’로 불리는 젊은 연극인의 대두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제로세대’ 연극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에 극단 첼피치(Chelfitsch, selfish의 유아적 발음-역주)의 오카다 토시키가 <3월의 5일>로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을 수상한 즈음부터다.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은 극작가 기시다 쿠니오의 유지를 받들고 젊은 극작가를 육성할 목적으로 1955년부터 운영되고 있는데, 신인극작가의 등용문이자 연극계의 아쿠타가와상(일본의 근대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리는 상으로 순수문학 부문의 신인작가에게 수여되는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이다-역자주)이라는 별칭을 가진,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희곡상이다. 2007년에는 고탄다단의 마에다 시로의 <살아있는 자, 아무도 없는가>, 2009년에는 모토야 유키코의 <완전 행복, 열라 감사!>, 올해는 극단 마마고토의 시바 유키오가 <우리별>로 이 상을 수상하며 ‘제로세대’ 연극인에 대한 주목도는 더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들 극작가의 수상은 극작가나 연출가의 재능, 혹은 작품에 대한 평가라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일본연극의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반증이다.


이번 글에서는 ‘제로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극인을 소개한다.


▶ 오카다 토시키 / 첼피치 (http://www.chelfitsch.net)
1973년생인 오카다는 97년에 첼피치를 창단하여 요코하마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시다 희곡상 심사 당시, 연극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역으로 활용한 훌륭한 구상이 높은 평가를 받았고, 종잡을 수 없는 현재 일본의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비춰낸 기량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이따금 히라타 오리자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히라타 오리자가 현대구어연극을 실천하는 조용한 연극을 지향했다면 오카다는 그것보다 한발 더  나아가 리얼한 구어라는 언어성을 추구하되 젊은이의 언어를 희곡에 도입하는 초구어연극(超口語演劇)으로도 불린다. 또한 오카다 연출 특유의 신체성은 종종 ‘무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2005년에는 무용작품 <쿨러>(Cooler)로 2005 도요타 안무가상(TOYOTA CHOREOGRAPHY AWARD 2005)의 결선에 안무가로 노미네이트되면서 안무에 대한 명확한 컨셉을 제시하며 컨템퍼러리 댄스에도 놀라움과 충격을 준 바 있다. 현재는 일본 국내보다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역전현상’을 보이고 있다.


오카다 토시키 / 첼피치 <핫페퍼, 에어컨, 그리고 작별 인사>

촬영 : Toru Yokota


▶ 미우라 다이스케 / 포츠 도루 (http://www.potudo-ru.com)
1975년생인 미우라는 와세다대학교 연극반 멤버들과 함께 96년 포츠도루를 창단했다. 초기의 <못난이-열등감을 끌어안고->부터 <마누라 타박>까지는 연극적으로 과장된 드라마가 특징이었지만, 2000년의 <기사 클럽>부터 이전까지의 스타일에서 일변해 연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작품에 도전한다. 철저히 현실을 추구하는 이 작품은 세미다큐멘트라고 불리며 매스컴에도 대대적으로 언급되었다. <신체검사>는 무대 위에 완전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는데, 배우가 연기를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의 사생활을 짊어지고  무대에 오르는 표현법은 많은 칭찬과 동시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2년 <남자의 꿈>부터는 세미다큐멘트에서 얻은 성과를 드라마에 도입하면서 다양한 접근법으로 리얼리티 있는 허구를 그리게 된다. 또한 2004년의 에서는 대사를 일절 배제하고 상태와 풍경만으로 작품을 만드는 등, 연극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 마에카와 토모히로 / 이키우메 (http://www.ikiume.jp/keisaijoho.html)
1974년생인 마에카와는 2003년에 이키우메를 창단, 친숙한 일상의 가까운 곳에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스릴 넘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2009년, 생체정보를 기반으로 한 ID 하나로 모든 경제활동, 건강상태부터 행동이력까지 관리되는 수치화된 인간이 사는 유비쿼터스 특구라는 모델도시를 무대로 한 <안과 밖, 그리고 건너편>으로 요미우리 연극대상에서 우수작품상과 연출가상을, 2010년에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바로 5센티미터 앞에서 마치 투명한 벽에 충돌하듯 자동차가 대파되는 기묘한 교통사고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함수 도미노>로 기노쿠니야연극상 개인상, 요미우리연극대상 우수연출가상을 수상하는 등 최근 들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소설(私小說, 일본 특유의 소설형식으로 자신의 경험을 허구화하지 않고 그대로 쓴 소설, 한국문학에서의 신변소설과 유사하다-역자주) 스타일의 생활극에 편중되어있는 현재의 일본연극계에서 오컬트에 대한 관심과 창작욕구가 연결되어 완성되었다는 마에카와의 스타일은 상당히 개성적으로 느껴진다. 


마에카와 토모히로 / 이키우메 <겉과 안, 그리고 건너편>

촬영 : Aki Tanaka


▶ 모토야 유키코 / 극단 모토야유키코(http://www.motoyayukiko.com)
1979년생인 모토야 유키코는 2000년 전속단원이 없는 극단 모토야유키코를 창단한 이후, 자의식으로 뒤엉킨 과대망상의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독특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2007년, 아들의 자살미수 책임을 물으러 교무실에 쳐들어온 학부모와 그 사건을 계기로  이면을 드러내는 교사들의 모습을 그린 <조난>으로 츠루야난보쿠희곡상의 최연소 수상자가 됐고, 2009년에는 남편의 내연녀가 집에 쳐들어온 것을 계기로 그 내연녀를 숨기고 복수극을 펼치는 가족을 그린 <완전 행복, 열라 감사!>로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을 수상했다. 또한 소설 <멍청이라도 슬픈 사랑을 보여줘>, 희곡 <조난>으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으로 아쿠타가와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영화화한 <멍청이라도 슬픈 사랑을 보여줘>는 2007년 칸느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정식출품되기도 했다. 모토야의 연극이나 소설은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 그녀의 작품이 가진 매력은 얼핏 단순한 것 같지만 복잡한 심리를 가졌으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있다고 평가 받고다.


▶ 마에다 시로 / 고탄다단(http://www.uranus.dti.ne.jp/~gotannda)
1977년생인 마에다 시로는 대학생이던 1997년에 고탄다단을 결성, 히라타 오리자가 운영하는 아고라극장을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해왔다. 2007년 <살아있는 자 아무도 없는가>로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을 수상.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배우 17명과의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이 작품은 이유도 모르는 채 등장인물 모두가 죽어가는 내용으로, 서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죽음을 그린 작품, 기분이 상쾌해지는 정당한 부조리연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제로세대’라고 칭해지는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의 총아들은 힘들이지 않고 보는 사람을 힘 빠지게 하는 파워를 가진 표현(일본에서는 ‘탈력계’로 불린다)으로 기존의 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삶이나 가치관을 제시해왔다. 마에다 역시 그 중 한사람으로 실연의 슬픔으로 소변이 멈추지 않는 남자나 기억을 버리고 자신이기를 포기한 남자, 헤어진 애인의 집에 기어들어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사는 남자 같은 주인공들의 망상과 살기 위한 작은 모험을 그려 동세대의 호감을 부르고 있다. 소설가로서도 활동하며 <사랑도 아니고 청춘도 아닌 여행은 가지 않아>로 노마문예신인상을, <연애의 해체와 북구의 멸망>이 노마문예신인상과 미시마 유키오상을, <그레이트 생활 어드벤처>로 아쿠타가와상에 각각 노미네이트되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제로세대’의 연극적 특징 중 하나는, 많든 적든 히라타 오리자(1962년생)의 연극관에 영향을 받은 세대라는 점에 있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 히라타 오리자가 보여줬던 ‘현대구어연극’과 ‘리얼=일상성(조용한 연극)’이라는 이론이, 제로세대 연극인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발전, 그들만의 표현으로 발전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앙그라연극이 연극의 허구성을 이용해 자신들이 속해 있는 세계의 현실(리얼)을 투영해왔다면 히라타 오리자 이후의 젊은 세대는 ‘리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들이 서 있는 일상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의 특징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제로세대의 연극이 팝컬처화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로세대’의 많은 연극인들이 연극에만 머물지 않고 소설, 음악,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장르에서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두 명의 일본 연극평론가에게 ‘제로세대’에 대한 의견을 청했다.
평론가인 사사키 아츠시는 “(히라타 오리자 이후의 제로 세대의) 흐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은 연극의 드라마투르기나 감동을 오랫동안 지탱해온 ‘근거 없는 심리’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그 전제를 의심하는 데에서 출발하되 그럼에도 연극을 믿으려고 하는 자세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연기하는 것에 대한 위화감/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나 연기 위상의 다원화, 발화의 극단적인 이화, 발화와 신체의 분리, 플롯의 유희성/게임성의 과도한 강조, 에피소드의 단편/파편화, 초고차원연극(메타메타연극) 등에서 보듯 극히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그것들은 자칫하면 보이기 위한(그러나 반드시 성공이라고도, 유의미하다고도 생각되지 않을 법한) 형식상의 실험인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예부터 당연시하고 받아들여 온 심리주의를 배제해도 ‘연극은 이야기이자 허구’라는 명제가 성립할까 하는 과감한 도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연극평론가 니시도 고진 씨는 “세계와 나는 직결되어 있고 그 중간항은 일절 없다, 이것을 속칭 세계계(世界系)라 한다. 제로세대에 유행하는 젊은이들의 생태 중 한 측면이지만 제로세대에 등장한 소극장의 경향과도 어딘가 맞아떨어진다. 그에 반해 세계와 나는 대칭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무수한 갈등과 도발,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가 개재하는 연극이 있다. 그것을 나는 ‘세계연극’이라고 부른다. 거기서 연상되는 것이 한스 티스 레만이 제창한 ‘포스트드라마 씨어터’다. 레만이 제창한 ‘포스트 드라마’란 종래의 연극을 바꾸기 위한 역사적인 상상력으로 ‘그냥 지금’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그 이전의 연극사에 입각한 연극(역사)비판인 것이다. 일견 비슷한 듯한 형상이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제로세대의 연극에 포스트드라마와 같은 과거에 대한 명석하고 지적인 검증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현재의 몸을 통한 반영으로는 두터운 역사를 비판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2500년의 역사를 가진 연극을 비판하고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제로세대의 연극은 이러한 난관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고 평한다.


이렇게 제로세대 연극인들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 하지만 연극과 그에 대한 도전에 대해 연극론적으로 회자되는 작품이 적었던 최근의 일본연극계에서 ‘제로세대’를 비평의 대상으로 하여 연극 자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침체되어있던 일본연극계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제로세대들의 도전은 새로운 연극의 흐름을 기대하게 한다.


  • 기고자

  • 기무라 노리코 _ 한일연극교류협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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