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예술계에 파문을 불러일으킨 「극장법」(가칭)의 행방
글: 기무라 노리꼬 (프리랜스 공연기획자)
2009년 9월 높은 지지율을 얻어 출범한 하토야마 정권. 하지만, 2010년 6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사임으로 9개월 남짓의 짧은 시간을 뒤로 한 채 해산되었다. 9개월의 기간 중 새 정권은 각 분야의 개혁에 착수했는데, 문화예술계도 그 소용돌이 안에 놓였다.
새 정권이 실시한 예산 재분배 작업(시와케, 국가 예산의 재고를 위해 국민에 대한 (예산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예산집행 현장의 실태를 근거로 사업의 필요성을 판단, 재원의 염출을 도모하고 정책?제도?조직 등의 향후 과제를 도출하는 것)에 의한 문화예술 관련 예산의 일률적 삭감, ‘문화예술의 자기책임’을 강조, 실적과 채산, 효율을 기준으로 한 문화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은 정권 자체의 높은 지지율과는 상반되게 문화예술 관계자로부터 큰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문화예술 정책과 함께 큰 논쟁거리로 부상한 것이 「극장법」(가칭)(이하 극장법)이다.
일본에는 박물관을 대상으로 규정한 「박물관법」(1951년), 지방자치단체 및 공익법인이 설치한 도서관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관법」(1950년) 등, 시설을 정의하는 이념적인 법률이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에 관련된「문화예술진흥기본법」, 극장시설과 관련된 「흥행장법」「소방법」「노동기준법」「노동안전위생법」「아동복지법」「전파법」「고령자?신체장애인 등의 원활이용촉진법」「건축법」 등은 있지만 극장시설 자체를 정의하는 법률은 없었다.
이 「극장법」은 2001년 12월에 공포?시행된 「문화예술진흥기본법」에 대해 사단법인 일본예능실연가단체협의회(이하 예단협)가 같은 해 5월 공표한 ‘「예술문화기본법」(가칭) 제정 및 관련 법률 정비를 -21세기, 창조적 사회의 구축을 위해- 실연가들의 제언(중간정리)’가 발단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연령과 성별, 주거하는 지역 등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풍부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문화에의 참여 기회가 보장되도록’ 문화예술기관에 법률적 지위를 주도록 제언하고 있다. 제언의 구체화를 위해 2002년 ‘극장프로젝트’를 발족시키고 극장을 국민의 평등한 공연예술 향유를 위한 사회적 장치로서 정비하고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후 ‘극장활성화프로젝트’로 이름을 바꾸고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수많은 조사연구와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극장의 역할과 과제’ ‘지역의 비전이 극장의 모습(창조형, 제공형, 커뮤니티 아트센터형, 집회시설형)’ ‘지역의 책임, 그리고 국가가 지역 거점극장 정비에 관여할 필요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예술단체?예술가와의 연계(상주단체, 제휴단체)’ ‘안전성 확보(무대기술자 인력양성의 과제와 운영체제의 정비)’ ‘열린 극장(평가지표, 공개정보의 표준화)’ ‘자율적인 극장사업의 확립을 향한 법적기반의 정비’ ‘무대기술자의 기능과 연수, 자격제도’ 등이 다각적으로 검토되었다. 이러한 조사연구와 논의로부터 나온 것이 「극장법」인 것이다.
「극장법」은 현재 있는 국립극장, 공공극장 등을 활성화시키고 ‘실연예술의 공공적 가치를 사회로 연결시키는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전국에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사회의 활력과 창조적인 발전을 만들어내는 실연예술의 창작, 공연, 유통을 촉진할 거점형성을 정비하는 법이다.(예단협 자료 「국민의 창작, 관여, 참가 거점을 전국에 정비하는 법률 규정의 방향성(가칭 극장법)」 중)
구체적으로 현재 일본 전국의 공연이 가능한 시설 약 3천개 남짓 중 2100개 시설이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것이다. 이들 공공문화시설을 「극장법」으로 정의함과 동시에 공연예술 전문가와 연계하여 전국의 문화예술 거점으로 정비한다는 내용이다.
예단협이 일찍부터 제언해온 이 「극장법」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하토야마 정권의 내각관방참여(내각관방은 일본 내각의 보조기관이자 총리를 보좌?지원하는 내각부 소속의 행정기관. 그 중 ‘참여’ 직책은 전문가를 특정 행정사무의 자문역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비상근 국가공무원 신분이다-역자 주)으로 취임한 극작가 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 씨가 향후 문화정책의 큰 그림(grand design) 대해 “연극을 만드는 주체가 극단에서 극장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극장법」과 연결되는 발언을 하면서부터였다. 히라타 씨의 발언은 앞으로 문화정책의 방향과 지원의 대상을 극단에서 극장으로 이행한다는 의미이다. 이 발언은 인식의 차이나 오해가 덧붙여지며, ‘극단 등의 창작단체에 대한 지원금이 줄어들 것’ ‘중앙의 예술가가 지방 공공시설의 예술감독이 되거나 중앙의 예술단체가 지방의 상주단체나 제휴단체가 되면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단체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 등의 추측을 불러일으키며 큰 파문을 가져왔다.
히라타 씨의 발언은 ‘극장법에 의한 연극인 1만 명 고용’으로 이어진다. 그의 생각은 약 10년 전부터 실시해온 문화청의 ‘거점형성사업 지원’(문화회관, 극장, 미술관, 박물관 등이 시행하는 자체기획제작 공연, 그 외 사업을 대상으로 지원을 실시, 문화예술 거점 형성을 꾀하는 것. 약 68억 엔 규모)이라는 극장제작을 기본으로 한 문화예술 지원의 흐름이 있고 또한 극장이 제작한 작품이 연극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평가를 받는 현재의 시대적 추세에 맞춰 극단 시스템이 아닌 극장시스템으로 바꾸어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논의에서 ‘기존의 극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예술가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그리고 ‘교육’이 포인트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논점이 ‘연극인 1만 명 고용’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이러한 논의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지 히라타 오리자 씨와의 인터뷰(사단법인 일본연극협회 기관지 [join] 2010년 4월호)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우선, 기존의 극단에 대해서 히라타 씨는 “네 가지 정도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세계 중 어디든 그렇듯 피터 브룩이나 태양극단 같은, 극단일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지’하고 인정하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곳에 많은 지원금을 줘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죠. 전통예술도 대략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점과 함께「극장법」이 생겨 극장이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모든 작품을 극장이 만들 거라는 오해가 있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실제로는, 예를 들어 프랑스나 벨기에처럼 연출가나 극단이 프로포절(기획제안서)을 극장에 제출하면 극장이 고르는 방식이 될 겁니다. 그러니까 작품을 만드는 주체는 극단이나 연출가 개인이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처럼 극장을 대관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관료가 무료가 되고, 게다가 극장이 제작에 협력하는 형태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단, 그런 경우 여러 가지 계약형태가 있을 수 있는데 연출가만 극장에 가서 작품을 만드는 경우와 극단 전체가 극장과 협업(collaboration)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극장에 따라 상주단체를 가질 수도 있겠고, 연출가는 예술감독이 되거나 극단과 함께 극장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겠죠. 극장과 각각의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극단은 그대로 있고 연출가만 예술감독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중략)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각자 지방극장과 제휴하거나 공동제작하거나 하는 시대로 바뀌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신진예술가 육성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35세 이하, 혹은 10년차까지 등으로 정하고 공연 단위가 아닌 장학금 같은 방식으로 지원하는 겁니다. 연출가에게 3년간 매년 300만 엔 정도씩 지원해서 1년간 작품을 만들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공부를 해도 괜찮은 방식으로 서서히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저는 신진육성을 위해서라면 얼마를 들여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뿌린다는 소릴 들어도 경쟁과 도태의 과정을 만들어 두면 예산 재분배도 버텨낼 수 있습니다. (중략) 이 방식은 문화청이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35세 정도까지 (그 지원을) 따 내느냐 못하느냐로 우선 한번 도태되죠. 그 후 대부분 30대에 예술감독이 되니까 연 수입 400~700만 엔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차차 경쟁과 도태의 과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에 관해서는 “올해 4월부터 ‘연극과 무용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시작됩니다. 올해는 2억 엔입니다. 조사비 1천만 엔을 떼어놨고,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겁니다. 이 2억 엔을 최종적으로 200억 엔까지 늘리고 싶습니다. 200억 엔이 있으면 전국의 초중학교에서 연극 체험이 가능하게 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교육사업으로 연극인 5천 명의 고용을, 그리고 「극장법」으로 또 5천명의 고용을 확보하는 것이 연극인 1만 명 고용인 것이다.
「극장법」에 대해 현재 각 정당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해, 민주당은 문화예술진흥의원연맹을 설립했고, 자유민주당은 예산 재분배를 받아들이고 극장법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공명당 역시 예산 재분배에 이어 극장법의 검토와 비전제시를 진행하고 있어 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년도(일본의 경우 4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를 회계 연도로 한다) 들어「극장법」제정을 위한 움직임으로 보이는 상황들이 서서히 표면화되고 있다. 한 가지 예로, 문화청에 올해 사업에 대한 지원금을 신청했던 민간단체 주최의 국내, 혹은 국제 공연예술 축제의 대부분이 심의에서 탈락했다. 이 심의결과 발표 후, ‘우수 극장?콘서트홀의 창조발신사업’이라는 신규사업의 공모가 시작됐는데, 이 사업은 극장?음악전용공연장 등의 문화시설이 중심이 되어 지역주민이나 예술관계자와 함께 추진하는 음악, 무용, 연극 등의 공연예술 제작, 교육, 보급, 인재양성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스스로 창작?발신할 수 있는 우수한 극장이나 콘서트홀이 각지에서 성장하여 지역의 문화예술활동 활성화와 주민의 관람기회를 확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체 예산은 16억 엔, 각 사업비 예산의 절반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86개 사업을 선정하며, 이들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5년간 계속 지원할 예정이다.
이 사업에 대해 한 프로듀서는 “도쿄 중심인 현재 상황에서는 지원금액에 맞춰 수준 높은 대규모 기획을 할 수 있는 지역이 많지 않습니다. 지방에서 어느 정도 응모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화청은 도쿄의 기획에 대해서는 도쿄 할당량만큼만 선정할 계획이고, 지방의 응모가 적으면 2차 공모를 해서라도 지방할당을 채운다는 방침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도쿄의 문화예술은 죽어버리겠죠. 도쿄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문화예술이 도쿄에 집중되어 있다는 현실에도 주목했으면 합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 「극장법」자체에 대해 공연예술 관계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 전통 있는 극단의 프로듀서는 “우리 극단은 변함없이 올해도 지원금을 받았습니다. 현재로서는「극장법」이 단체의 지원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은 미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제정, 시행된다고 가정하면 지금의 안(案)으로는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현장에 있는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꼼꼼히 검토하고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겠죠.”라고 말했다.
또한 문화예술 관련 법률 전문가는 “박물관법이나 도서관법도 그 시설을 규정하는 이념적인 법률입니다. 현재 제안되어 있는 극장법의 내용이 지원금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법 안에서 극장시설과 지원금의 흐름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극장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있고 검토가 진행되는 중간 과정에 있다. 또한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 제정ㆍ시행되든지 국제교류에서도 극장시설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날 것이고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제교류라는 관점에서도, 또한 일본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해외예술가와 단체에 있어서 앞으로의 「극장법」은 주의 깊게 지켜봐야할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