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명주 (런던대학 골드스미스 콜리지 연극학과 박사과정)
<영국 공연계, 2000년대를 정리하며 2010년대를 예감한다 I>에서 이어집니다. 정치풍자극의 유행 연극계의 ‘참여’정신은 사회, 정치적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논하는 정치연극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정치코미디와 함께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 버배텀연극(verbatim theatre)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유행하게 했다. ‘토니 블레어 - 부시 정권’의 세계적인 스캔들이었던 이라크 전쟁이 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되면서 2000년 중반부터 이를 소재로 한 정치극이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토니 블레어와 부시 전 대통령을 직접 등장인물로 내세우고 그들이 언론을 통해 했던 말들을 재조합하여 만든 데이빗 헤어의 정치코미디 <스터프 해픈즈(Stuff Happens) 2004>는 개막부터 대대적인 인기를 얻기를 기록했고, 뉴욕으로까지 수출되었다. <내 이름은 레이첼 코리(My Name is Rachel Corrie) 2006>는 자원봉사로 가자 지구를 방문했다가 이스랑엘군에게 살해당한 한 미국인 여대생의 실화를 그린 연극으로, 레이첼 코리의 이메일 내용을 그대로 편집하여 만든 극본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토니 블레어와 이라크 전쟁은 코미디 뮤지컬, <토니 블레어 뮤지컬 2007>까지 등장시키며 연극계 전반의 인기소재가 되었다. 이외에도 데이빗 헤어, 앨런 베넷 등 영국의 거장 극작가들이 선도하는 국립극장의 정치극 시리즈와 함께 로열코트극장를 통해 선보인 젊은 작가들이 정치풍자극들이 인기를 누렸다. 데이빗 헤어의 <영원한 길(Permanent Way) 2003>은 철도사유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고, 최근작 <예스의 힘(Power of Yes) 2009>는 금융계가 불러온 세계적인 재정난의 연유를 파헤치는 경제드라마였다. 앨런 배넷의 <히스토리 보이즈, 2004>는 영국의 귀족화된 사립교육의 문제를 흥미진진한 풍자극으로 풀어내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또한 로열코트가 발굴한 20대의 여성작가, 루씨 브레블의 신작 <엔론(Enron) 2009>은 미국 석유회사 엔론의 파산을 둘러썬 경제계의 스캔들을 음악과 무용이 있는 코미디로 선보여 장기공연에 돌입했고, 헤롤드 핀터에 후계자로 자처하는 작가 제즈 버터워쓰의 농촌정치드라마 <예루살렘 2008> 역시 큰 인기를 얻으며 웨스트엔드로 진출했다. 이외에도 저스틴 부처(Justin Butcher), 알리스터 비튼(Alistair Beaton)을 비롯하여 인도, 아프리카계의 작가들을 포함한 새로운 세대의 정치극 작가들이 2000년대를 통해 다수 등장했다. 이러한 연극계의 정치성은 심지어 인기뮤지컬, <빌리 엘리엇 (2005)>에서 까지도 나타났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웠던 전 대처수상이 광산파업의 원흉으로 비난되는 장면은 전 출연진이 대처여사의 캐리캐처와 의상을 입고 등장하여 그녀를 풍자하는 노래를 불러서 큰 박수를 받았다. 라이브 공연의 중계방송 또한 ‘참여’의 화두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여, 라이브공연을 실황중계 또는 녹화방송형식으로 시도하여 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케 하였다. 로열오페라하우스는 트라팔가 극장의 대형스크린을 통해 오페라 및 발레 공연을 대중에게 공개 상영하는 여름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과의 만남의 방식을 바꾸었다. 국립극장에서는 대극장 올리비에의 공연작 <페드라>를 전국 지정 영화관에서 실황중계 하는 방식으로 상영하여, 공연장에 직접 오지 못한 수 만명의 관객들이 동시 관람하게 하는 시도를 하였으며 이러한 공연 실황중계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를 비롯하여 시리즈로 계속될 계획이다. 또한 잉글리시 투어링 씨어터와 영빅극장이 공동으로 토마스 하디 원작의 <미친 관중으로부터 멀리(Far From the Madding Crowd)>, 클레어 베일리의 불법이민자를 그린 연극 <컨테이너(The Container)>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고해상, 다운로드 연극작품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디지털을 활용한 게임 연극 이외에도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명 ‘디지털 공연’들이 200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신생극단, 파일럿 씨어터(Pilot Theatre), 하이드앤씩(Hide and Seek), 코니(Coney) 등이 주도하는 디지털 공연들은 인터넷 게임과 라이브공연을 혼합한 형식의, 연극의 ‘놀이성’을 강조하는 공연들을 시도한다. 연극이라기 보다는 연극성을 담보한 라이브 게임에 가까운 방식의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작년 사우스뱅크에서 개최된 게임페스티벌, 샌드핏으로 화제를 모은 하이드앤씩극단의 예술감독, 알렉스 플릿우드에 따르면, 개인적으로 2005년 펀치드렁크의 공연을 보고 난 후 연극의 ‘놀이성’에 크게 영감을 받아 이 장르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이러한 게임방식의 공연들은 관객참여연극에 영향을 받은 신종장르로서 참여방식을 한 단계 발전시켜, 관객이 직접 ‘플레이어’가 되는 보다 직접적인 참여의 방식을 지향한다. 2년 전 부터 게임아트 네트워킹이벤트(The Games Art networking event 2008, 런던)’, ‘쉬프트 해픈즈(Shift Happens, 2008, 뉴욕)’와 같은 국제컨퍼런스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색하면서, TV 방송과 아츠카운슬의 지원으로 성장하고 있는 디지털 연극은 인터넷 쇼셜 네트워킹 사이트, 모바일 GPS 등 각종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면서, 연극과 게임, 방송을 혼합한 형식의 새로운 공연들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도시자체를 무대로 하여 시민들을 플레이어로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를 모색 중이다. 2010년에는 LIFT 페스티벌과 사우스뱅크센터가 중심이 되어 선보일 이러한 공연들은 아직 시험단계이긴 하지만, 보다 폭넓은 관객층을 위한 저예산 엔터테인먼트공연으로서의 성장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성기를 맞은 영국 무용계 2000년대를 통해 영국은 웨인 맥그레거, 아크람 칸, 로이드 뉴슨(DV8), 매튜 본 등이 세계적인 안무가로 성장하면서 현대무용의 진흥기를 맞았다. 특히 무용공연을 상연하는 주요공연장이 늘어나면서, 가디언 지의 주디스 맥크렐이 선언하듯, 런던은 2000년대 중반부터 파리를 제치고 유럽 무용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1998년 보수공사를 마치고 재오픈한 새들러즈웰즈 극장은 피나 바우쉬, 윌리엄 포사이드 등 세계 정상의 안무가들의 공연을 선보이며 현대무용 상설공연장으로 자리잡으며 런던을 무용중심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극장에서 시즌마다 공연된 매튜 본의 <호두깍기인형>, 남성판 <백조의 호수>는 대중적인 레퍼토리로 자리를 잡았고, 세계힙합대회를 비롯해, 각종 힙합공연, 인디언 댄스 플라멩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용장르를 포함하는 프로그램으로 무용관객의 폭을 넓혔다. 또한 바비칸센터에서도 BITE(Barbican International Theatre Event)을 통해 마이클 클락, 데보라 콜커 등 우수 무용공연을 꾸준히 선보였고, 보수공사를 맞친 로열오페라하우스의 린버리 스튜디오는 소규모의 현대무용 및 신체연극을 선보이는 전문 공연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도 현대무용공연을 상연하기 시작해, 2003년 머스 커닝햄 무용단의 공연을 비롯해, 2005년 DV8 <코스트 오브 리빙>이 테이트 모던 갤러리 전체를 활용하는 ‘공간맞춤’공연으로 선보였다. 또한 스크린댄스(Dance for Screen)의 발전과 함께 미디어를 위한 무용공연의 숫자가 대폭 증가하였고, 이는 유투브 등 각종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보다 확대된 접근성을 확보했다. 특히 힙합과 같은 대중적인 장르의 무용이 메인스트림에 합류하면서 2000년대의 영국의 현대무용은 보다 대중적인 방식과 모습으로 새로운 관객을 만들어 내며 유례없는 전성기를 누렸다. 스타캐스팅 2000년대 공연계를 장식한 또 하나의 흐름은 ‘스타 캐스팅’이었다. 런던의 돈마르웨어하우스에서 샘 멘데스가 예술감독으로 재임할 당시, 연극 <불루룸 1998>에 니콜 키드만을 기용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연극 <프루프 2002>에 기네스 펠트로가 출연하였고, 2003년, 마이클 그랑다지가 새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2005>에 유안 맥그리거, 크리스찬 슬레이터, 페트릭 스웨이지 등 유명 남자 영화배우들을 차례로 기용하면서 가속화 되었다. 이후, 연극 <컷(The Cut), 2006>에 ‘갠돌프’로 유명한 노배우, 이안 맥켈런이 출연한 것을 비롯해 유안 맥그리거의 <오델로 2007>, 주디 덴치의 <마담 드 사드 2009>, 주드 로우의 <햄릿 2009>으로 이어지며 매진사례를 이루었다. 또한 2003년 미국의 영화배우 케빈 스페이시가 올드빅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면서부터, 자신과 함께 동료 이안 맥켈렌을 비롯한 헐리우드의 스타들이 출연하는 고전연극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스타캐스팅은 연극계의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경제난을 맞이한 연극계에 재정적인 돌파구를 제공하는 전략으로서, 고전작품을 스타캐스팅으로 재활용하는 ‘안정적’인 경영방안으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립극장 정치극 시리즈 앨런베넷의 <히스토리 보이즈>
대대적인 인기로 브로드웨이 진출에 이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머스커닝햄 무용단의 테이트모던 갤러리 공연
사진출처 http://www.harlequinfloors.com
스타캐스팅
유안 맥그리거의 <오셀로>
경제난으로 시작하는 2010년의 예감
2000년대 처음 10년을 장식한 ‘참여’라는 화두는 사회적으로 대중들의 ‘참여’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면서 2010년대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2년 올림픽을 앞두고 펼쳐지는 문화올림피아드를 통해 다양한 지역 커뮤니티를 포함하는 전국적인 문화예술 이벤트가 다양하게 펼쳐질 것이다. 반면, 재정난의 위기 속에 국가의 문화예산이 올림픽에 집중되면서, 일반 예술지원금은 대폭적인 삭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많은 문화예술기관들이 유례없는 재정난을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08년부터 서서히 아츠카운슬의 지원금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예술계는 재정 위기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예술기관이 속출하고 있다. 런던 북부의 해크니 엠파이어극장은 20억이 넘는 부채 속에 올 초부터 문을 닫기로 결정되었고, 60여 년 동안 런던의 현대예술의 메카였던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역시 조만간 부채가 2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어 5월경부터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예술계의 경제악재 속에, 새로운 저예산 연극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강요될 것이고, 그러한 방안의 하나로서 ‘관객참여’ 형식의 연극은 ‘대중성’의 기치를 내세우며 새로운 연극경험을 원하는 관객들을 흡수하며 보다 많은 극단들에 의해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지원금에 의존하는 공립연극계는 경제위기 속에 생존방안을 모색하려 안간 힘을 쓸 것이고, 상업연극계는 스타캐스팅에 의존한 명작 시리즈로 명맥을 유지할 터이다. 또한 유례없는 경제난과 올해에 치루어질 대선거를 앞두고, 영국 국민의 정치 및 사회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드높을 것이며, 그런 사회분위기 속에 정치풍자극은 2010년대 영국연극계의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10년 벽두부터 <엔론>과 <예루살렘> 등, 인기 정치코미디가 웨스트엔드에서 장기공연에 돌입하면서 이러한 추세를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싹을 틔우기 시작된 디지털 연극은 그것이 디지털 시대의 반영이든, 아니면 일시적인 유행이든, 게임세대의 관심과 대규모의 새로운 관객유치 가능성을 높이 사는 아츠카운슬의 지원을 기반으로 한 동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글프게도 2010년의 서두를 장식하는 화두는 ‘재정난’이다. 그러나 가디언 지의 아드리안 시어를이 말하듯 ‘위기는 좋은’ 것일 수 있다. 기존의 습관적인 경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도록 강요되는 환경, 그것은 아마 새로운 변화를 거듭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예술계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내는 기회를 제공할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2010년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10년간, 보다 새로운 예술, 보다 도전적인 연극들이 속출하기를 희망해 본다.
디지털연극 하이드앤씩 페스티벌의 게임공연 <체크포인트>
사우스뱅크에서 열린 공연에서 참가자(관객)가 ''밀수꾼''이 되어 의자를 훔쳐
달아나는 장면
참고문헌
Adrian Searle ‘예술계 위기에 대한 노트 (Notes on an Art Crisis)’ The guardian, Monday 9 November 2009 http://www.guardian.co.uk/artanddesign/2009/nov/09/art-world-crisis 11/11/09
Michael Billington ‘리뷰: 지난 10년간의 연극계 (Review of the Decade: Theatre)’ The Gurdian, Tuesday 8 December 2009 http://www.guardian.co.uk/world/2009/dec/08/review-of-the-decade-theatre
Judith Mackrell ‘리뷰: 지난 10년간의 무용계 (Review of the decade: Judith Mackrell on dance)’ The Guardian, Monday 7 December 2009
‘2000년대의 하이 포인트(High points of the noughties)’ The Observer, Sunday 27 December 2009
Peter Boyden ‘영국 지방극장의 역할과 기능 (The Roles and functions of the English Regional Producing Theatres)’ 2000. 5. Arts Council Eng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