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그리고 퍼포먼스 2022-08-03

사라진 회색지대

박재용(큐레이터, 통번역가)

지난 4월 말 개막해 11월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예년보다 1년 미뤄져 3년 만에 개최된 이번 비엔날레는 초현실주의 예술가 레오노라 캐링턴이 만든 그림책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을 제목이자 주제로 차용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인 큐레이터 체칠리아 알레마니는 팬데믹을 비롯한 전 지구적 재앙 앞에 선 인류를 언급하며, 서구 근대성을 지탱해온 보편적 인간관의 실패와 인간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를 제안했다.

작지 않은 규모로 치러지다 못해 전시 속 전시까지 더해진 이번 비엔날레 본전시의 풍경은 지난 몇 차례에 비엔날레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많은 관람객이 지적한 바, 현대미술 하면 떠오르는 영상 작업이 많지 않았고 전형적인 비엔날레 전시와 달리 작고한 작가들의 비율이 꽤 높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팬데믹 이전에 치러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크게 강조되었던 ‘퍼포먼스 아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2019년에 치러진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사상 최초로 ‘퍼포먼스 프로그램’을 본전시의 일부로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베니스 비엔날레는 본전시 하나로 이뤄진 단일 행사가 아니라 본전시의 주제에 조응하는 80여 국가의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와 수십 개의 ‘병행 전시’까지 동시에 진행되는 하나의 거대한 축제라 할 수 있다. 최고의 내셔널 파빌리온을 선보인 국가와 작가에게는 ‘황금사자상’을 수여하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두 번의 비엔날레에서 황금 사자상을 가져간 국가는 모두 퍼포먼스 아트를 선보인 곳이었다.

Anne Imhof,〈Faust〉, 2017 ⓒ La Biennale di Venizia
Anne Imhof,〈Faust〉, 2017 ⓒ La Biennale di Venizia

〈2017년〉는 무려 다섯 시간 길이의 퍼포먼스였다. 베를린의 나이트클럽에서 볼 법한 검은 의상을 차려 입은 퍼포머들이 관객의 발 아래, 유리로 만들어진 바닥 밑에서 계산된 움직임을 선보이거나 직접 관객 사이를 오가고, 관객을 밀고, 물을 뿌리고, 전시장 벽면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무언가를 칠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에 대해 “우리 시대의 시급한 문제를 보여주는 강력하고도 불편함을 자아내는 설치(a powerful and disturbing installation that poses urgent questions about our time)”라고 평했다. 이 퍼포먼스는 거의 7개월에 이르는 비엔날레 전 기간에 걸쳐 매일 반복되었다.

〈2019년〉는 60분 길이의 퍼포먼스로, 건물 2층의 입구로 들어서면 아래까지 뻥 뚫린 공간에서 해변을 재연한 무대와 피서객을 연기하는 퍼포머들을 볼 수 있었다. 영화감독, 작가, 작곡가가 협업해 만든 이 작품에서, 해변의 피서객처럼 보이는 퍼포머들은 ‘기상학자’와 ‘산호초’ 같은 기후 위기 관련 어휘를 노래했다. 웹사이트에 공개된 리브레토에 따르면, 이 작품은 스스로를 ‘오페라-퍼포먼스’로 규정한다. (이처럼 명확한 대본 혹은 지시문이 존재한 덕분에, 비엔날레가 끝난 뒤 세계 각국에서 다시 ‘상연’되기도 했다.)

Lithuanian Pavilion, 2019 ⓒ La Biennale di Venizia
Lithuanian Pavilion, 2019 ⓒ La Biennale di Venizia

2010년대 후반의 여러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처럼 퍼포먼스가 강세를 띤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 현대미술 영역에서 ‘무용 전시’가 존재감을 넓혀온 것과 궤를 함께한 현상이기도 했다. 퍼포먼스와 사회참여 미술 등 관객 혹은 참여자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현대미술에 대해 비평해온 미술사가 클레어 비숍은 2018년에 쓴 “블랙박스, 화이트큐브, 그레이존: 무용 전시와 관객의 주목(Black Box, White Cube, Gray Zone: Dance Exhibitions and Audience Attention)”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주목한 바 있다. 현대미술에서 무용 혹은 퍼포먼스의 부상은 실험적 연극의 블랙박스와 미술관의 화이트큐브가 결합된 ‘그레이존’을 통해서라는 것이 비숍의 주요 논지였다. 더불어, 이러한 회색지대의 예술에 점차 소셜 미디어가 영향력을 넓히는 시대에 눈앞에서 일어나는 존재감과 공동체의 감각을 충족시키는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팬데믹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지만, 2년이 아닌 3년 만에 비엔날레를 찾은 관객들이 바라는 건 그 무엇보다 ‘예전과 같은’ 북적임 아닐까? 혹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이 더 커져버린 지금,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가 펼쳐지는 상황을 통해 존재감을 실감하려는 욕구가 어느 때보다 크지 않을까? 따라서, 한국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삼엄한 락다운과 엄청난 수의 사망자들을 떠나보낸 이후의 유럽에서 개최된 2022년의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다시 한 번 퍼포먼스의 부상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Croatian Pavilion, 2022 ⓒ La Biennale di Venizia
Croatian Pavilion, 2022 ⓒ La Biennale di Venizia

하지만 이 글의 제목을 통해 암시했고 본전시를 짤막하게 소개한 문장에서도 언급했듯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전반적으로 ‘퍼포먼스’의 형식을 취하는 작품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국가별로 진행하는 내셔널 파빌리온 가운데 퍼포먼스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그마저도 팬데믹 이전의 비엔날레에서 기대할 만한 형태의 퍼포먼스 작품은 아니었다. 예컨대 크로아티아는 상점의 쇼윈도 하나를 빌려 매일 무작위로 선정된 시간과 장소에 베니스 곳곳에서 벌어질 퍼포먼스를 안내하는 지시문과 QR코드를 담은 큰 포스터를 붙여두었다. 마치 공연장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장소(그레이존, 회색지대)에서 공연장이라기엔 열악한 상태로 바닥에 앉거나 다른 관객과 어깨를 부대끼며 관람하는 현대미술 퍼포먼스 작품은 베니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는 회색지대를 바라기엔 코로나19가 야기한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과 금액이 급증한 여행과 운송비용 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인 탓일까? 혹은, 이러한 상황들이 (퍼포먼스의 필요조건처럼 여겨졌던) 회색지대의 성격 그 자체를 변화시킨 걸까? 비록 미술에서 익숙한 형태의 퍼포먼스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비엔날레 전시를 선보이는 베니스 섬 전역에서는 수많은 관객들이 각자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이었다. 전 세계에서 3년을 기다려 베니스를 찾아온 관객들은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르는 비엔날레 관람을 기록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도구를 동원해 자신의 시선을 기록했다.

전시장에서 사진기나 휴대전화를 꺼내는 모습은 과거의 그 어떤 비엔날레에서보다 자연스러웠다. 또한, 이미지 기록 장치의 렌즈가 전시장이나 작품을 향하는 것만큼이나 관람객 스스로를 향하는 경우도 많았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에서의 종이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인쇄물을 연결시켜두거나 관람에 곁들일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 링크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입된 QR코드는 전시장에서의 촬영-퍼포먼스에 동참하지 않는 관람객들마저 각자의 모바일 기기를 들고 뭔가를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자연스럽게 조성했다.

Mire Lee,〈Endless House: Holes and Drips〉, 2022 ⓒ La Biennale di Venizia
Mire Lee,〈Endless House: Holes and Drips〉, 2022 ⓒ La Biennale di Venizia

과연 다음 비엔날레에선 살아 움직이는 몸들이 관람자와 상호작용하는 형태의 퍼포먼스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회색지대의 성격 자체가 바뀌고 말았다면, 우리에게 익숙했던 인간-퍼포먼스보다 인간 대신 작품 자체에 움직임이 부여된 키네틱-퍼포먼스, 훈련된 퍼포머가 퍼포먼스를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뜻하지 않게 퍼포머가 되는 지시-퍼포먼스를 더 많이 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다만 세계 현대미술의 ‘지금’을 보여준다는 비엔날레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박재용

박재용(큐레이터, 통번역가)
큐레이터이자 통번역가, 필자로 주로 동시대미술 현장에서 활동한다. 큐레이터, 프로듀서로서〈토탈리콜〉(일민미술관, 2014),〈The United Paradox〉(Portikus, 2015), 제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2016-17), 현대미술가 카데르 아티아의〈이동하는 경계들〉(2018), 국립현대무용단 10주년 웹아카이브 등을 기획, 제작했다. 최근 출간된 번역서로〈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2022),〈무슨일선집 1〉(2021) 등이 있으며,〈아트인컬처〉,〈The Financial Times〉등 국내외 매체에 현대미술과 관련한 글을 기고한다. 시각문화의 일부이자 역사적 산물로서의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며, 미술서가 ‘서울리딩룸’을 운영한다.

Tag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
center stage korea
journey to korean music
kams connection
pams
spaf
kopis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