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젠더 정치학에 질문하는 한국 현대무용들 2022-07-06

젠더 정치학에 질문하는 한국 현대무용들

영국 2022 코리안댄스페스티벌 패널 토론

글: 조형빈(웹진 춤in 편집위원)

6월 17일(금)부터 25일(토)까지 약 일주일 동안, 런던 더플레이스(The Place)에서 한국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여성 안무가 4인의 작품이 올려졌다. 2022 코리안댄스페스티벌(A Festival of Korean Dance 2022)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주영한국문화원(원장 이정우)이 영국의 현대무용기관 더플레이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한국의 현대무용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2018년 시작된 이래 매년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올해 코리안댄스페스티벌에서 소개된 공연으로는 아트프로젝트보라 김보라의〈무악舞樂〉, 황수현의〈검정감각〉, 이윤정의〈설근체조〉, 콜렉티브에이 차진엽의〈미인 : MIIN - 바디 투 바디〉등이 더플레이스 무대 위에 올려졌다.
특히 이번 코리안댄스페스티벌에서는 한국의 안무가들과 함께 진행한 패널 토론을 통해 한국의 무용 현황과 과제들을 알아보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현지시간 6월 17일(금) 더플레이스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나딘 파텔(Nadine Patel)의 모더레이팅으로 진행된 이 패널 토론에는 이번 행사에 작품〈무악舞樂〉으로 참여한 김보라, 유럽을 기반으로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허성임, 호페쉬 쉑터 컴퍼니에서 활동하는 김예지가 한국 현대무용에서 나타나는 젠더 정치학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패널 토론의 주제는 무엇보다도 급변하고 있는 한국의 젠더 정치학적 상황이 동시대 무용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고 호흡하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한국의 동시대 무용의 지형 안에서 여성성의 화두가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고, 이것을 안무가들은 어떻게 작업과 연결시키는지에 대한 여러 질문이 오고 갔다. 나딘 파텔은 한국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수성들 -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에 비해 젠더 이슈가 상대적으로 적게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 여성 정치인 수가 적고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젊은 남성들의 목소리가 강하게 표출되었던 정치적 환경 등 -을 언급하며, 이러한 정치적 지형도가 무용 작업과 어떻게 마주치고 있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Festival of Korean Dance 2022 <무악舞樂>ⓒTHE PLACE
Festival of Korean Dance 2022〈무악舞樂〉ⓒTHE PLACE

한국의 젠더 지형들

한국의 현대무용과 젠더 정치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한국의 젠더 지형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던져졌다. 특히나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문제 인식과 페미니즘 이슈를 전에 없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안무가들의 경험들이 공유되었다. 김보라는 한국 페미니즘의 짧은 역사 안에서 이 주제를 공론화할 자리가 부족했고 소통이 힘겨웠음을 이야기하며, 본인의 작업에서도 페미니즘을 다루는 방식이 변화해왔음을 이야기했다. 특히 페미니즘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주제로 다룬 이전의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어느 순간 ‘가짜 페미니즘’이었음을 깨달았던 경험을 공유하며, 단순히 성별을 나누는 이분법적 방식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분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음을 언급했다. 김보라는 페미니즘 이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불균형’임을 지적하는데, 결국 이 ‘불균형’을 물리적으로 동등하게 만드는 것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균형’을 이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영국과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허성임과 김예지는 한국 제도권 무용 교육 안에서의 경험들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며, 한국의 젠더 정치학이 현재 계속해서 변화하는 흐름 안에 들어와 있음을 설명했다. 허성임은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압박이 놀라우리만치 감추어져왔음을 언급하며, 이것이 미투 운동(Me Too movement) 등을 통해 터져 나왔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한국의 여성이 처한 사회활동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하고 비대칭적인지 통계를 들어 묘사했는데, 결혼과 육아를 통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매우 가시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남녀가 결혼에 의지를 보이는 비율에 있어서 정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통계를 예시로 들었다. 김예지 역시 한국에서 제도권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관습적으로 받아들였던 성 역할에 대해, 영국에 와서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되돌아보게 된 경험을 공유했다.
이어서 나딘 파텔은 보다 무용 제도적인 차원에서 실질적인 무용단들의 활동에 대해 질문했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더 오래 지속되어 온 영국에서도 여성 안무가가 개별 무용단를 이끌고 있는 사례는 드물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한국의 상황을 공유해주기를 요청했다. 김보라는 스스로 여성 안무가로서 풀타임 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의 경험을 공유했는데, 한국의 지형 안에서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개별 무용단이 보장된 직장으로서 역할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언급했다. 또한 안무가 혹은 기관이나 단체의 대표를 가리지 않고 남성의 비율이 높은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한국의 무용 교육이 대부분 제도권 교육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제도적 한계와 깊게 연관되어있을 것이라 분석했다. 다만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실제로 체감되고 있고, 페미니즘의 방향도 인간으로서의 개별성과 고유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더욱 확대되는 중이며 우리가 어떤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에 있음을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김보라, 허성임, 김예지ⓒTHE PLACE
왼쪽부터 김보라, 허성임, 김예지ⓒTHE PLACE

몸과 여성성

젠더 정치학이 한국의 현대무용 작품들과 어떻게 호흡하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로 나아가기 위해, 토론은 무대 위의 몸들이 그것들이 구현하고 있는 여성성과 어떻게 관계맺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김보라는 2019년 더플레이스에 초청되었던〈소무〉의 사례를 이야기했는데, 안무가로서 김보라 본인이〈소무〉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여성성의 개념이 돌이켜보면 ‘가짜 페미니즘’이었음을 밝혔다.〈소무〉에서는 몸을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경계들로부터 느끼는 의미에 더 주목하고 텍스트에 의존함으로써 여성성을 과도하게 드러내고자 했기에, 그것이 ‘가짜 페미니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김보라는〈소무〉를 통하여 페미니즘을 작업과 본격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으며, 안무가로서 이 주제에 대해 김보라 본인만의 작업 방식을 찾아나갈 수 있었기에 의미있는 작업이었음을 동시에 언급했다.
허성임은 여성성을 더 깊이 들여다보았던 사례로 2019년 작업〈넛크러셔(Nutcrusher)〉를 들었다. 이 작품에서 허성임의 질문은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의 조건이 어떻게 획일화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또한 더불어 ‘여성성’의 개념이 반드시 ‘여성’에게만 존재하는지 질문함으로써 한국 사회 안에서 여성성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허성임은 한국에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으니 무례하다”는 말을 들었던 과거를 이야기하며, 영국으로 오면서 이에 맞서 싸우거나 대응하기 위해 여성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몰두했음을 밝혔다. 또한 ‘힘의 불균형’의 측면에서 남성에게 기득권이 집중되어있음은 사실이나, 그 원인을 사회에 돌리기보다 작품 안에서 관객들이 허성임의 몸 위에서 무엇을 보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왔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지는 청중의 질문은 실제로 작업 과정에서 젠더 정치학에 대한 무용수들의 견해가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김예지는 본인의 몸에 국한되지 않은 것으로서의 여성성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하며, 함께 작업하는 무용수들이 몸과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하고 이를 통해 관객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고 답했다. 김보라의 경우 작업 안에서 방법을 가지고 무용수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거나, 혹은 대화를 하지 않음으로써 몸으로 받아들이는 두 가지의 방법을 활용한다고 답했고, 허성임의 경우 작업 안에서 남성 무용수와 여성 무용수를 활용함에 있어 젠더 위계와 성 역할에 갇히지 않기 위해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밝혔다.

김보라ⓒTHE PLACE
김보라ⓒTHE PLACE

젠더 정치학에 질문하기

더플레이스의 코리안댄스페스티벌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이번 패널 토론에서 김보라, 김예지, 허성임 세 명의 여성 안무가는 각자가 젠더 이슈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것을 작품을 통해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몸을 통해 젠더를 들여다봄으로써 여성성(혹은 그 반대급부로서의/나머지로서의 남성성)을 어떻게 풀어내는지의 화두는 동시대 예술에서 가장 첨예한 주제 중 하나다. 특히 한국의 상황에서 젠더 정치학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그 안에서 표출되고 있는 현상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안무가들이 무용이라는 몸의 매체로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지금의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더플레이스의 이번 프로그램이 여성 안무가의 작업들로 구성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올해 코리안댄스페스티벌에 초청된 네 작품들은 각기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목소리로 몸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젠더 권력이 개인의 몸에 어떠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는지를 현상함과 동시에 안무가 처한 동시대적 과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작품들이다. 또한 페미니즘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온 안무가들을 패널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한국의 무용이 지금 주목하고 있는 이슈들을 공유하고 영국의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어내었다. 이번 패널 토론에서 이야기된 한국 현대무용의 젠더 정치학적 화두들은, 앞으로 무용이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학 안에서 어떻게 이야기들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지 그 방향성을 제안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형빈

조형빈
조형빈은 사회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무용비평가,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하고 있다. 몸과 움직임이 무대 위에서 발생시키는 맥락들에 관심이 있으며, 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무용월간지〈몸〉, 서울세계무용축제, 을지예술센터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웹진〈춤in〉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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