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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위한 예술가들의 낮은 목소리 2022-04-08

우크라이나를 위한 예술가들의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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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_여행작가

“나는 어릴 때 그 안에서 빛을 보았다. 그를 존경한다” 여기서 ‘나’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천재 발레리노 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이고 ‘그’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2018년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폴루닌은 가슴에 푸틴 문신을 하고 나타나 고국 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폴루닌 못지 않은 명성을 가진 우크라이나 출신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Svetlana Zakharova) 역시 푸틴의 열렬한 숭배자로 러시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자하로바는 러시아의 크림반도Crimea 강제 합병에 지지 서명을 했다.
지금 두 천재 무용가의 이름은 우크라이나에서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무용계도 이들에게 등을 돌렸다. 예정되었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폴루닌의 이탈리아 아르침볼디 극장Arcimboldi Teatro 공연과 자하로바의 라 스칼라La Scala 극장 공연이 취소되었다. 이들 외에도 푸틴과 절친인 러시아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Valery Abisalovich Gergiev는 뉴욕 카네기홀 공연이 취소된데 이어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Munich Philharmonic Orchestra에서는 해고되기까지 했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동양 사회와 달리 예술 지상주의적인 서구 사회에서 이런 모습은 이례적이다.

“버클리 음대에서 첫 학기를 시작했을 때 바딤 교수도 부임해서 첫 학기를 맞은 때였다. 미국에서 처음 만난 음악 스승이 바딤이었던건 내 인생에 큰 축복이었다. 열과 성의를 다해서 가르쳐주었다.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에너지까지 모두 끌어 모아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항상 매 수업마다 '자작곡 써야 한다, 너의 음악적인 색을 찾아야 한다'고 했고, 매학기 말에는 본인이 직접 시간을 할애해서 학생들의 자작곡 공연을 도왔다. 그때 바딤 교수에게 배울 때 작곡한 곡을 내 앨범 1집과 2집에 수록했다.”
재즈피아니스트 배가영 씨가 기억하는 바딤 네셀로프스키Vadim Neselovskyi 교수의 모습이다. 3월 8일 애드바트ADVART에서 열린 ‘바딤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하우스 콘서트에서 배 씨는 바딤 교수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리고 바딤의 조국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손팻말을 들었다. 푸틴과 친한 거장들이 러시아의 폭력에 침묵을 지키는 동안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조용히 낮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애드바트의 <하우스콘스트-바딤의 친구들>에 참여한 배가영 재즈피아니스트 @애드바트(ADVART)
애드바트의 <하우스콘서트-바딤의 친구들>에 참여한 정은혜 피아니스트 Ⓒ애드바트(ADVART)


이날 ‘바딤의 친구들’ 공연에는 배 씨 외에도 바딤의 제자인 재즈피아니스트 정은혜 박진영 강재훈 씨가 참여했다. 바딤은 영상편지를 통해 “요즘 매일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를 한다. 우크라이나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결코 외롭지 않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공연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된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공연이 이뤄진 애드바트 작업실은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100m도 안되는 거리에 있다. 우크라이나 대사관 옆 벨기에 대사관에서는 참사관이 공연에 참석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대사관에서는 고국의 급박한 상황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드미트리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공연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에게 영상 편지로 고마움을 전하고 이런 행사를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재즈 번역가로서 하우스콘서트를 주최한 애드바트 최종하 대표는 우크라이나 대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3월 18일 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거리 음악회’를 다시 열었다. 최지선 영상감독과 장민수 음향감독 등이 현장에서 공연 세팅을 도왔다. 현장에는 우크라이나대사관 직원을 포함해 백여 명이 비가 오는 가운데도 자리를 지켰다.

공연을 마치고 재즈피아니스트 정은혜 씨는 “바딤은 내게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를 알게 해준 사람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이후 우크라이나인을 위한 곡을 써서 연주하고, 고향 오데사를 그리는 많은 곡을 선보였다. 전쟁 직전까지도 키이우 오케스트라와 협업하는 등 우크라이나와의 음악적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했다. 이런 바딤을 알고 지켜보던 나에게 전쟁 소식은 나에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바딤과 그의 조국을 위해 ‘Together We March On’ 이라는 곡을 급히 작곡해 연주했다. 음악은 구조화된 소리이다. 뜻, 감정, 사회적 행동방식, 세계관 등의 모든 내용이 소리 에너지에 담겨 그대로 전달된다. 국난을 극복하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절실하고 애달픈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애드바트의 <하우스콘스트-바딤의 친구들>에 참여한 배가영 재즈피아니스트 Ⓒ애드바트(ADVART)
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에서 다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거리 음악회> Ⓒ애드바트(ADVART)

우크라이나를 위한 하우스콘서트와 거리음악회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문화예술 긴급 행동(이하 우크라이나 랜선행동)’의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인 3월3일 조직된 이 그룹은 페이스북 그룹으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문화예술들의 느슨한 연대다. 350여 명의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평화 정착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랜선행동’의 취지는 각자 선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크라이나를 돕자는 것이었다. 소프라노 정찬희 씨는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는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자 플라멩코 무용가 최원경 씨가 이 노래에 맞춰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기운을 몰아주는 안무를 짜서 이를 공연하고 동영상을 올려주었다. 가야금 연주자 하소라는 우크라이나의 안녕을 기원하며 가야금 곡 ‘천년만세’ 중 계면가락을 연주했다.

KBS 아나운서 출신인 오유경 씨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민족시인 타라스 셰우첸코의 시를 낭송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다. 서울민예총 이사장인 가수 손병휘 씨는 오유경 아나운서가 낭독한 시에 다시 곡을 붙였다. 우리 민중가요를 영어로 번안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 손 씨는 “앞으로의 진보 예술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국내 문제에만 천착하지 않고 우리 밖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인 예술행동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한류'의 가치를 전세계에 나눌 수 있기를 원한다”라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했다. 사진가 김진석 씨는 우크라이나에서 찍은 사진을, 캘리그래퍼 김소영 씨는 ‘우크라이나’ 캘리를 제공해 우크라이나 랜선활동에서 활용하도록 해주었다. 만화가인 고경일 상명대 교수는 우리만화연대 회원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는 카툰을 그렸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는 이들이 그린 카툰 작품 25점 정도를 반전 전시회 때 함께 전시하기로 했다.

우리만화연대의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카툰’Ⓒ우리만화연대
우리만화연대의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카툰'(Ⓒ우리만화연대)

우크라이나 랜선행동의 일환은 아니었지만 인디밴드들도 우크라이나 평화 성금을 모으는 콘서트를 열었다. 3월12일과 13일 라이브앤라우드 소극장에서 ‘이상한술집’ ‘시나쓰는앨리스’ ‘머스트비’ ‘애시드로즈’ 등의 인디밴드들이 공연하고 150만원의 성금을 모아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이체했다.

우크라이나 랜선활동을 주도하는 동안 재한 우크라나인들과도 두루 소통했다. 재한 외국인들의 활동을 돕는 그레이스 홍이 중간에서 역할을 해주어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과 연결이 되었다. 젊은 우크라이나인인 예브게니 씨와 나나 씨와 함께 줌미팅을 가졌는데 그들에게 우크라이나 랜선활동을 알렸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의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지원을 호소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우리가 궁금했던 소식도 들려주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스탈린 시대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후손이 2만 명 정도 살고 있는데 이들의 안부를 확인해 주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의 고려인 중에서는 미콜라이우주 주지사로 러시아군에 맞서서 최전방에서 분투하고 있는 비탈리 김이 잘 알려져 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잘 조직되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페이스북그룹을 중심으로 소통했으며 그 중 활동적인 참가자들은 매주 주말 주한 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침략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경희대에 유학 중인 카트리나는 대사관 앞 거리음악회 때 우크라이나 국가와 ‘어머니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가 이 커뮤니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올레나 쉐겔 교수가 우크라이나 커뮤니티와 연결해 함께 ‘우크라이나 평화음악회’를 열어보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평화음악회’는 지휘자 양승열 씨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좋은 작곡가들이 많다. 한국에 있는 러시아 뮤지션들이 우크라이나 작곡가의 곡을 연주해서 평화를 기원한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며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평화음악회’는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주도로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재즈와 클래식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킨,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던 세르게이 프로포피예프, 구소련 독재에 항거했던 실베스트로우 그리고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이 우크라이나의 대표 음악가로 꼽힌다. 문화 강국인 우크라이나는 특히 키예프 발레단이 유명한데 자주 내한 공연을 가졌다. 키예프 발레단이 속한 키예프의 셰프첸코 극장은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과 함께 구소련 3대 극장으로 꼽혔다.

국내에도 우크라이나 음악가들이 제법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고국이 침략당했다는 소식에 그들은 활동을 멈추고 고국을 지키기 위해 귀국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주친 드미트로, 트럼펫 연주자 마트비옌코 코스탄틴, 비올라 주자 레우 켈레르 씨는 키이우 음악원 선후배 사이인데 모두 귀국해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는 ‘우크라이나 평화콘서트’를 위해 국내에 있는 우크라이나 음악가들을 섭외해 주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평화음악회’에 러시아 음악인들이 참가한다면 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곡이 있다. 구소련 저항시인 예브게니 예프투셴코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반전 가요 <러시아인들은 전쟁을 원하는가>라는 곡인데, 그 가사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러시아인들은 전쟁을 원하는가?/ 드넓은 밭과 평야 위의 침묵에,/ 자작나무와 미루나무에 물어보라./ 자작나무 아래 누워있는 저 병사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그들의 아들들이 당신에게 대답하리라./ 러시아인들이 전쟁을 원하는가를”

 
고재열
고재열은 시사저널과 시사IN에서 기자생활을 20년 동안 하고 현재는 여행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애 전환 기술로서의 여행'을 고민하며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을 만들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고 '우크라이나를 위한 문화예술 긴급 행동'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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