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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기의 저니투코리안뮤직 2021-12-01

어려운 시기의 저니투코리안뮤직

_크리스토퍼 콘더Christopher Conder(영국 음악저널리스트)

여권과〈한국에 대한 간략한 안내 책자〉, 여벌 속옷 한 벌과 서류로 꽉 찬 폴더 두 개를 넣으니 기내용 가방이 가득 찼다. 백신 접종 증명서, 격리 면제 서류, PCR 테스트 결과지(음성), 전자여행허가(K-ETA) 서류, 호텔 예약과 여정 관련 문서 등의 사본 준비를 위해 벌목된 나무만도 열대우림의 절반은 될 듯하다. 뭔가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것 같은 기분이지만,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애써준 덕에 차질 없이 인천공항 세관을 무사히 통과했다.

크리스토퍼 콘더
크리스토퍼 콘더

필자는 영국 런던에서 음악 관련 글을 쓰는 작가다. 2013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K-뮤직 페스티벌K-Music Festival이 개최된 이후, 나는 한국의 소리에 거의 집착하는 수준이 되었다. 가장 먼저 접한 한국 음악은 4인조 앙상블 그룹 거문고 팩토리를 통해서였다. (아쉽게도 현재는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자랑하자면, 영국 최초로 잠비나이를 소개하는 글을 쓴 사람이 바로 본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판소리 거장 안숙선 선생님을 인터뷰했고, 워마드WOMAD에서 노름마치와 대화를 나눴으며,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기간에는 신노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유일하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아직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저니투코리안뮤직 초청장이 도착했을 때, 흥분을 참을 수 없었다. 이후 4개월간 불안에 떨며 팬데믹 기사를 확인하는 동안, 한국에 갈 수 있을까 의심키도 했지만, 결국 나는 한국에 왔다. 저니투코리안뮤직은 쇼케이스와 투어 패키지를 세트로 묶어 놓은 형태다. 예년의 경우 대체로 전 세계 25명 내외의 인사가 한국 음악에 몰입할 수 있게 일주일간 초청되었는데, 올해의 경우 복합적 상황을 감안하여 6명의 소수정예(그렇게 믿고 싶음) 인원이 초청되었다. 필자 외에 유럽 출신의 프로모터 버깃 엘링하우스Birgit Ellinghaus와 피터 반 롬페이Peter Van Rompaey, 활기찬 라틴계 캐나다인 페스티벌 운영자 알프레도 칵사이Alfredo Caxaj와 이자벨 시스터나Isabel Cisterna, 미국의 매력적인 라디오 DJ 테런스 맥나이트Terrance McKnight가 초대되었다. 이들 중 누구도 만난 적이 없고, 각자 성격도 아주 달랐지만, 최고의 유대감을 경험하였다.

우선 실제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 코로나 19 이후 처음 해보는 중요한 여행이었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혼란스러웠다. 베트남과 인도는 가봤지만, 부유한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는 건 이번에 처음이었다. 번듯한 공항, 고층빌딩, 편안한 아파트 호텔은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지만, 콘크리트와 유리 사이로 이국적인 식물이 무성하게 튀어나오는 건 생소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듯한 시원시원한 오피스 구역은 초록 지붕의 고궁과 나란히 있었다. 때때로 낡고 낡은 식료품 차가 세련된 신형 차 사이에서 뒤뚱거리며 나타나는가 하면, 요란한 광고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귀여운 만화 주인공이 등장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시켜주었다. 날씨는 예측 불가였다. 해가 나고 따뜻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이 글을 통해 한국에 있는 내내 가이드 역할을 해주신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담당 팀과 관계자분들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저니투코리안뮤직_그루브앤드 쇼케이스
저니투코리안뮤직_그루브앤드 쇼케이스

계명국 감독은 한국의 상황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국가별, 장르별, 세대별 불평등이 가시화되었다고 진단한다. 특히 상업-비상업 예술 간의 격차는 특히 한국의 경우 BTS를 위시한 케이팝과 비상업적 장르 간 불균등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하나의 장르 안에서도 코로나 이전의 국제교류를 경험한 기성 예술가와 신진 예술가 간 세대의 격차가 목격되는데 이후 신진 예술가들의 소외로 진행되지 않을지 우려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코로나 이후 새로운 장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였다.

첫 일정은 국립국악원 방문이었다. 흠잡을 데 없는 기관이었다. 잡지〈송라인스Songlines〉에 국립국악원에 대한 글을 자세히 기고하는 중인데, 이렇게 전문적이며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전통음악 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한국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저녁에는 드디어 공연을 보러 갔는데, 레드피시Red Fish의 재즈풍 공연, 타악그룹 그루브앤드Groove&의 활기찬 불협화음, 박순아의 훌륭한 가야금 연주가 펼쳐졌다.

둘째 날은 은평 한옥마을과 진관사를 방문해 서울의 목가적 풍경을 둘러보는 ‘마음 챙김 여행’으로 시작했다. 한국의 다도를 배우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선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성적인 영국 남자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음에는 현악 듀오 리마이더스ReMidas, 실험적인 대금연주가 백다솜, 신예 관악/비트 트리오 삐리뿌BBIRIBBOO(피리 소리에서 작명된 이름)의 공연을 관람했다.

저니투코리안뮤직_진관사 방문
저니투코리안뮤직_진관사 방문

셋째 날은 라이브 음악으로 시작했다. ‘비평가의 선택’ 상을 수여한다면 서정민과 김소라 사이에서 갈등할 것 같다. 물론, 텐거Tengger의 넋을 빼놓는 전자 사운드도 간과할 수 없다. 서정민의 경우 수년 전 듀오 ‘숨’[su:m]을 인터뷰할 때 만난 적이 있는데, 함께 활동하던 박지하만큼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 쇼케이스는 서정민의 인지도에도 변화가 있어야 마땅하다는 근거가 되었다. 가야금 연주자 서정민은 시나위 전통에 관한 심오한 연구를 바탕으로 타악연주자 유병욱, 소리꾼 김율희와 호흡을 맞추며 혁신, 전통, 음악성, 기량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었다.

국제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장구연주가 김소라의 음악을 처음 접해보았는데, 뜻밖의 발견이었다. 김소라는 ‘장구’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한다. 철저히 반주용으로만 사용하던 장구를 주목받게 한 것이었다. 또 다른 타악연주자 현승훈과 관악연주자 오초롱이 합류한 김소라의 그룹은 절제와 에너지의 마스터 클래스다.

저녁에는 광화문아트홀에서 공연의 밤을 보냈다. (코로나 방역의 유일한 단점은 어둡고 더운 상황에서 마스크를 써야 해, 졸음이 쏟아진다는 사실이다) 젊고 귀여운 트리오 상자루의 코미디 공연은 전부 한국어로 진행되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풍부한 상상력으로 제작한 무대 세트와 흥겨운 음악은 인상적이었다. 이어지는 고물의 무대에서 라이브 음악과 현대무용의 조화를 감상하며 런던에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넷째 날에는 크로스오버로 성공을 거둔 세 그룹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잠비나이, 이날치, 해파리이다. 거리두기 기간에 가진 온라인 활동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저녁에는 신예 그룹 팔도보부상Bobusangs이 포크 음악과 랩, 일렉트로니카를 결합한 무대를 선보였다. 우리 중 상당수는 일어나서 춤을 출 정도로 그들의 무대는 이번 ‘저니투코리안뮤직’의 하이라이트 공연이었다. 조만간 여러 국제 페스티벌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예감이 들었다.

저니투코리안뮤직_팔도보부상 공연
저니투코리안뮤직_팔도보부상 공연

마지막 날인 5일차에는 서울을 떠나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전주를 방문했다. 그리고 판소리 예술공간 ‘동문창창’을 방문했는데, 빗속에서 진행된 민속 연극의 활기찬 리허설에 이어 폭우 속에서 진행된 기이한 옥외 공연을 관람했다. 관객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축제 측에서 제공한 비닐 우비를 입은 채 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으스스한 보라색 빛에 휩싸였다. 그 장면은 한국 무형문화재 축제보다는 마치〈X 파일〉의 한 장면 같았다. 동양고주파의 탁월한 공연까지 본 후에 필자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그러다가 이내 유희스카의 무대가 시작되어, 그들의 활기찬 에너지에 흠뻑 빠지고 싶어졌다. 유희스카는 국악과 자메이카 스카를 자신 있게 접목하는 그룹이다.

필자를 비롯한 음악저널리스트들은 씬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며, 아예 하나의 장르를 규정할 수 있다면 더욱 좋아할 것이다. 서울에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오래된 전통이 새로운 음악 제작방식과 만나고 있고, 그 결과 극적인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서로 마음이 맞는 뮤지션들은 협업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연 이러한 현상을 규정할 수 있을까? 잡지〈송라인스〉에서는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라는 표현을 써왔다. 개인적으로는 ‘트라디-모던’tradi-modern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만, 이 표현은 이미 콩고 음악가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런던 페스티벌의 표현을 따라 그냥 ‘K-뮤직’K-Music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약간의 유머를 섞어 ‘띵 앤 쿵’twang‘n’bang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해보려 한다. ‘드럼 앤 베이스’drum’n’bass와 비슷한 개념인데, 거문고 현에서 나는 ‘띵’ 소리와 장구에서 나는 ‘쿵’ 소리를 결합한 표현이다. 아쉽게도 피리 연주자가 빠져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국 ‘띵 앤 쿵’ 씬의 심오함에 필자는 끊임없이 감탄한다. 필자는 런던의 K-뮤직 페스티벌을 매년 보며 우수한 신진 아티스트가 고갈되었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거듭해서 즐거운 놀라움을 경험했다. 저니투코리안뮤직도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참여 예술가 중 단 한 명만 이미 필자의 레이더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재능 있는 더 많은 한국 예술가를 발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맥락 속에서 보는 일이었다. 런던의 콘서트홀에서 아무리 공연을 많이 본들, 직접 한국에 와서 현지 음식을 먹고, 경관을 보고, 패션을 즐기고,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의 통찰을 얻을 수는 없다.

그리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띵 앤 쿵’은 해외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 음악이 이미 극찬을 받는 월드뮤직계를 넘어서고 있다. 해금을 눈앞에 들이대도 뭔지 모르는 내 친구도 잠비나이는 너무나 좋아한다. 얼터너티브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꽂힌 다른 친구는 해파리를 극찬한다. 평소 필자의 음악에 할애할 시간이 거의 없는 남편도 이날치에게는 집착한다. 그는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를 흥얼거리며 집안에서 돌아다니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유명한 동작을 따라 한다.

필자는 다음 대화가 상상이 간다.
“야, 힙스터, 어떤 음악 들어?”
“음… 네오포크, 그라인드 코어, 아프로비트. 요즘은 한국 ‘띵 앤 쿵’에 완전히 빠져드는 중.”
이런 대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크리스토퍼 콘더(Christopher Conder)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잡지〈송라인스〉기고 중)
크리스토퍼 콘더는 잡지〈송라인스〉에 포크, 루츠, 월드뮤직 글을 정기 기고하는 저널리스트이다. 2019년까지는 잡지〈f루츠〉(fRoots)에 기고했다. 원래 전문 분야는 영국의 민속 음악이었지만, 2012년 베트남 방문 이후로 아시아 음악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기회가 되는대로 여행과 음악적 만남을 결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벨기에의 파이프/드럼 그룹에 심취하거나 멜라네시아의 열대우림에 머물며 아레아레(‘Are’Are) 부족의 사라져가는 전통 자장가를 듣는다. 전 세계의 봉쇄가 점차 풀리고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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