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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S Choice] 분단, 경계를 넘어 현실과 소통하는 디자이너 2013-09-16

분단, 경계를 넘어 현실과 소통하는 디자이너
[PAMS Choice 인터뷰] <모두를 위한 피자> 김황


관객은 언제나 작가가 아닌 작품을 만난다. 그런데도 김황이라는 작가가 늘 궁금했다. 그의 프로필은 이렇다. ‘홍익대학교 금속조형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제품 디자인과(Design Products)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일하며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 물론 그것 말고도 작가에 대한 이러저러한 설명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낯설었다. 무엇보다 그의 이름 곁에 항상 붙어다니는 ‘디자이너’라는 명함이 그가 보여준 일련의 작품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했다.

디자인으로 현실과 소통한다

Q: “비평적 디자인”이란 말을 많이 한다. 간단히 설명해 달라.

A: “비평적 디자인은 디자인의 전통적 틀을 벗어나 새롭게 디자인에 남고자하는 매우 모순적인 태도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기능도 기능이지만 물성이다. 바로 이 물질, 물성에 생각을 투사하는 것이 기존의 전통적 디자인이라면, 비평적 디자인은 물성을 빼버리고 오직 생각만 전달하는 디자인이다.”

Q: 물성을 뺀 생각을 전달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결국 자본주의의 생산 및 유통시스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기존의 디자인이, 그 틀에서 벗어나 보다 실천적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예술이 되고자 하는 건가?

A: 그렇다. 예술은 그 예술이 태어난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개인과 집단 간의 역학관계다. 그것은 디자이너가 혼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본주의 시스템 및 그 이면의 문제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 내 작업은 내가 서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다. <쿠쿤>이나 < CCTV >와 같은 작업도 그렇게 해서 가능했다.

피자 레서피가 담긴 DVD 커버 피자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동영상

연극과의 만남,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열다

Q: <모두를 위한 피자>가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제작 방식도 매우 특이했다. 이 작품을 제작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해 달라.

A: 원래부터 북한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면서 “Where are you from?” “I’m from Korea.” “North or South?”라는 연쇄적 질문 속에 수없이 노출되면서, 남북분단이라는 문제에 관심이 갖게 되었다. 그래서 피자 만드는 법에 대한 영상을 20개 제작해서 북한 지역으로 들여보냈었다. 그 뒤 다시 500개를 새로 제작했는데, 그게 바로 페스티벌 봄에서 상연되었던 영상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페스티벌 봄과 함께 작업을 진행한 건 아니었다. 페스티벌 봄으로부터 공연 의뢰를 받았을 당시에는 이미 내가 영상을 북한으로 들여보낸 뒤 북한 주민으로부터 피드백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언제 받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실 공연 며칠 전까지도 관객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피자...>의 후속편을 만들어 관객에게 보여줄까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중 브로커로부터 북한 주민들한테 편지를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게 아마 공연 일주일 전이었던 것 같다.

Q: 작가의 작업 중에서도 <모두를 위한 피자>는 매우 색다른 작품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사회적 지평 안으로 적극 끌어들였던 자신의 디자인을 이제는 극장이라는 구체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와 그것을 바라보는 구체적인 관객과 직접 만났다는 점이 그랬다.

A: 전시의 경우에는 솔직히 내 자신을 어느 정도 포장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피자...>의 경우에는 그게 불가능했다. 완전히 발거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디자인에 공간 말고 시간이 집약적으로 압축되어 들어간 경우는 없었으니까. 현장성이나 구체적 공간에 대해서는 사실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연극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관객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올리고 나니 연극이라는 것이 충격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는 이 공연이 디자인과 사회의 만남이라는 화두가 가장 집약적으로, 예술적으로 실천된 경우라고 생각한다. 나름 기존의 디자인의 방법론이나 소통방법(예를 들어 전시의 경우)에 대해 다소 식상해 있었던 차였는데, 이 공연을 통해 연극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Q: <피자...>에서 이루어진 커뮤니케이션은 일방향적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매우 다층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무대는 미리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중립적이고 유동적인 공간이었다. 무대로부터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만나면서 비로소 메시지들이 만들어지더라. 정치적 이데올로기만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다양한 화두들이 말이다. 그 화두들이 관객의 정서를 건드리고, 또 그로 인해 관객이 무대를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게 바로 현대공연예술에서 늘 강조되는 수행성(performativity)이 아니고 뭐겠는가.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영상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배우의 낭독까지 모든 것이 극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더없이 연극적으로 기능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때 연극적이라 함은 무대의 몸과 관객의 몸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공연은 디자인은 물론이고 연극이라는 측면에서도 굉장히 새로운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피자...>에서 작가가 얻은 여러 화두들이 올해 페스티벌 봄에서 공연되었던 < X: 나는 B가 좋던데. Y: 나도 스물 아홉이야 >로 이어진 건가?

A: 그렇다. 사실 < X...Y... >는 의도적으로 좀 더 연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이 작품의 경우에는 원래 중국과의 국경에 인접한 북한마을인 도문에서 작업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당시 남북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상황이어서 부득이하게 연변에서 하게 되었다. 공연에 사용된 건 스카이프라는 간단한 인터넷 기술이었고 자막은 번역가가 동시적으로 번역해서 올렸다. 이 공연에서 나는 아주 기본적인 틀만 만들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배우와 우연성에 맡겨버렸었다. 그야말로 디자이너적인 발상이다. 이 작품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소통 채널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연극적으로 불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즉 정치적, 문화적으로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두 그룹에게 일단 여러 기술적 장치를 이용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 다음, 연극적으로 계속해서 그 소통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Q: < X...Y... >의 경우에는 무대와 관객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만 있는 게 아니라, 무대 안에서, 무대와 무대 사이에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피자...>에서 돋보였던 탈 경계, 횡단, 그리고 소통이라는 화두가 < X...Y... >에서 더 복합적으로, 더 연극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떨어진 두 공간이 그때그때 주어지는 제한된 조건 하에서 소통을 시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소통이, 또 다른 상황들이 구축되더라. 의도했던 커뮤니케이션은 계속해서 좌절되지만, 그것이 전혀 다른,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냈다. 그 상황이 매우 아이러니하면서도 매우 진정성이 있었다.

A: 사실 양쪽의 배우들은 자신 마음대로 해석을 하고 그에 대해 대답을 했다. 그런데 사실 이 해석은 배우들이 각각의 주어진 상황에서 온갖 촉각을 곤두세우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결과였다. 그러니 결과론적으로 보면 배우들이 주고받은 것은 자신들 마음대로 해석한 것이기도 하고 아닌 것도 되는 거다. 그런 식으로 작업 자체가 가지는 아이러니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모두 가능하지만 결국 불가능하기도 한 것, 전혀 불가능하지만 결국 가능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북한주민들로부터의 피드백

분단을 넘어, 경계를 넘어

Q: <피자...>나 < X...Y... > 모두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는 전혀 가능할 수 없는 소통을 예술적으로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두 공연은 자크 랑시에르가 강조하는 감각의 분할, 즉 권력에 의해 분배된 것들을 미학적으로 재분할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창출하는 그런 정치성을 구현했다고 생각했다. 이 공연을 통해 관객들은 통일이나 분단에 대한 기존 담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들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민감한 주제를 가지고 공연을 만드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었을 텐데.

A: <피자...>의 경우 정부나 진보진영 양측이 자신들의 활동과 연관 지어 이 작품을 홍보해주었었다. 정부쪽에서는 이 작품이 북한체제를 고발하고 붕괴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통일부가 홈페이지에 이 작품을 홍보해주었으니 말이다. 반면 진보 진영 쪽에서는 이 작품이 북한주민과의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 중국의 베이징 청년 예술제에 초청을 받아 스케줄이 다 나온 상태였는데, 중국정부로부터 갑자기 공연 불가 판정을 받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을 걱정한다. 그러나 어렵겠지만 한번쯤 부딪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 X...Y... >도 다시 한 번 공연해보고 싶다. 이번에는 진짜 도문에서 스파이 카메라를 사용해서 말이다. 국가보안법은 컨텐츠에 매우 신경을 쓴다. 그런데 컨텐츠가 전혀 없다면, 즉 서로 전혀 대화를 하지 못했고 그래서 주고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이 공연을 제제할 수 있을까. < X...Y... >의 경우 결국 두 배우가 주고받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나만의 생각이기는 하다. 변호사나 전문가와 이 부분에 대해 상의해보고 싶기도 한데 기회가 없었다. 물론 국가보안법을 몇 번 통독했었는데 그 범위가 참 모호한 것이 많더라. 가장 먼저 북한 사람이라는 정의가 모호하다. 북한사람이면서 북한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

Q: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A: 디자인과 공연을 함께 연결 짓는 것이다. 다음 작품은 더 연극적으로 만들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내 작업은 어디까지나 디자인이다. 결국 배운 게 디자인이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남북문제를 다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대 동아시아의 예술의 방향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의 여러 큐레이터들이 다원예술을 한국에서(또는 동아시아에서) 태동한 예술의 한 장르로 정의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이 행위가 어느 정도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황은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말할 때는 더없이 강한 열정이 느껴졌으며, 그가 새롭게 탐험하기 시작한 연극에 대해 말할 때는 조심스러운 만큼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연극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너무나 모호한 질문을 하자, 그는 ‘공간과 시간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되는 예술형태’라고 하더니 이내 ‘이곳, 지금’이라고 고쳐 대답했다. 질문이 모호해서인지 대답은 너무나 단순했다. 하지만 이제 막 연극을 향해 작가로서의 예술적 지평을 확장하기 시작한 이 젊은 디자이너에게는 이보다 더 솔직하고 진지한 대답은 아마 없을 것이다.

모두를 위한 피자 페스티벌 봄에서의 퍼포먼스
  • 기고자

  • 이경미_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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